[영화-돼지의 왕]오늘도 우리는 지옥으로 등교한다

  • 문화
  • 영화/비디오

[영화-돼지의 왕]오늘도 우리는 지옥으로 등교한다

잔혹스릴러를 내세운 본격 성인 애니… 끔찍한 기억들, '비겁한' 나를 만난다 감독:연상호, 목소리 출연:오정세, 양익준, 김혜나, 김꽃비

  • 승인 2011-11-03 20:15
  • 신문게재 2011-11-04 11면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줄거리-15년 전, 어린 경민과 종석은 돼지들이었다. 그들을 사육하고 관리하는 건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는 강민 패거리다. 온갖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경민과 종석은 살아남기 위해 비굴한 웃음을 지어야 했다. 그런 자신들을 종석은 '돼지'라 불렀다.

애니메이션이라고 꿈과 희망이 담겼을 거라 여긴다면 틀렸다. 1990년대 중학교를 그렸다고 해서 복고풍의 따뜻함이나 10대의 풋풋함을 기대한다면 그것도 틀렸다. 첫 장면부터 섬뜩한 살인 장면으로 시작하는 '돼지의 왕'은 잔혹스릴러다.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암울하다.

충동적으로 아내를 살해하고 경민은 15년 넘게 연락을 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친구 종석을 찾아간다. 술잔을 앞에 놓고 두 사람은 중학교 시절의 기억을 번갈아 꺼내놓는데, '돼지의 왕'은 이 '회고담'이다. 그들이 안주 삼는 과거는 끔찍한 폭력의 기억들이다.

학교엔 두 부류의 아이들이 있다. 힘을 무기로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들과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이다.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비굴한 웃음을 지어야 했던 경민과 종석은 자신들을 '돼지'라 불렀다. 그때 철이가 나타났다. 경민을 폭행하던 아이들을 곤죽을 만들며 경민을 구해낸 순간, 철이는 수호신, '돼지의 왕'이 된다. 그런데 왕이 들려주는 교훈이 이상하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건 악이지. 착하게 살면 될까? 아니야. 힘을 가지려면 악해져야 해. 계속 병신처럼 살고 싶지 않으면 괴물이 되어야 해.”

'돼지의 왕'은 강자와 약자의 대립이 아니라 약자와 약자의 다툼을 비춘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희생양으로 삼는 악다구니. 이 애니메이션이 절망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 지점에서다. 칼로 오려낸 듯 날카로운 삽화체의 인물, 비명과 절규의 강도를 높이는 섬뜩한 사건들, 그리고 오정세, 양익준의 날 것의 목소리가 절망의 깊이를 더한다.

연상호 감독은 그 절망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 영화가 향하는 끝. 그 끝에는 소름끼치는 절망이 도사리고 있다.
어두운 사회의 일면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묘사한 장면들에서 혐오감과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이런 모습이 없다고 부정할 수 없는 슬픈 현실은 어쩔 것인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무비꼴라쥬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을 차지한 3관왕 영화를 다수의 극장에서 볼 수 없는 것부터가 그렇다. 대전아트시네마 상영 중.

안순택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2.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3.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4. [사진뉴스] 한밭사랑봉사단, 중증장애인·독거노인 초청 가을 나들이
  5. [WHY이슈현장] 존폐 위기 자율방범대…대전 청년 대원 늘리기 나섰다
  1.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 충청권 소방거점 '119복합타운' 본격 활동 시작
  3. [사설] '용산초 가해 학부모' 기소가 뜻하는 것
  4. [사이언스칼럼] 탄소중립을 향한 K-과학의 저력(底力)
  5. [국감자료] 임용 1년 내 그만둔 교원, 충청권 5년간 108명… 충남 전국서 두 번째 많아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