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 |
고조선의 팔조금법(八條禁法)에는 '도둑질을 하면 노비로 삼는다'고 하였고 모세의 십계명(十誡命)에서도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하였으며 불가에서는 탐·진·치(貪瞋痴) 삼독심(三毒心)중에 '탐(貪)' 즉 탐욕을 맨 앞에 경계하였는가 하면 로마제국에서는 '절도범이나 남의 경작지에 무단으로 침입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하였다.
절도가 용인되면 일하지 않고 남의 것을 몰래 취하려는 악습이 횡행하게 된다. 그래서 도둑질을 금하고 죄악시 한다. 그러나 인간은 남의 것을 탐하는 욕심이 도사리고 있는지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을 통하여 가르치고 법으로 다스려도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살기가 어렵거나 사회를 유지하는 시스템에 혼란이 일어날 때는 더욱 성행한다.
때로는 의적(義賊)이라는 이름으로 찬양되고 미화되기도 한다. 조선시대 일지매,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의 행적은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생명력을 이어 오고 있다.
우리사회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도둑과 도둑질이 있다. 그러나 농산물을 훔치는 짓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죄악가운데 하나라 하겠다.
지난봄 농사를 짓는 친척집에 갔는데 그 친척은 넋을 잃고 있었다. 사연을 들어 보니 어젯밤에 마늘을 모두 훔쳐갔다며 마늘대만 수북하게 쌓여 있는 퇴비장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7개월 여 애써 가꾼 끝에 수확하여 영농비, 생활비로 충당하고 외지에 있는 아들, 딸에게도 보낼 생각에 고단함을 견뎌가며 쏟았던 노력이 불과 몇 시간 만에 사라져 버린 그 황당함은 그를 공황상태에 빠뜨렸던 것이다. 그 도둑은 마늘만 훔쳐간 것이 아니라 수확의 기쁨을 앗아가고 희망을 날려버린 대신 허탈과 곤궁과 불신과 좌절과 증오를 남기고 간 것이다.
최민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의 저서 공무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옮겨 본다.
옛날에 어느 마을에 도둑이 들었는데, 한 도둑은 부잣집에 들어가 값비싼 금송아지를 훔쳤고, 또 한 도둑은 노적(積)해 둔 볏단을 훔쳤다. 얼마 후에 두 도둑이 모두 잡혔는데 우리 조상은 이 도둑을 어떻게 처벌하였는가? 금송아지를 훔친 도둑은 옥에 가두었다. 그러나 볏단을 훔친 도둑은 사형에 처하였다. 금송아지의 가치가 사람의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은 아니니 옥에 가둔 것이다.
그러나 볏단을 훔친 도둑은 경우가 다르다. 볏단의 값어치는 금송아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당시는 농경사회였다. 그런데 노적한 볏단을 도적맞았다고 한다면 앞으로 누가 농사를 짓겠는가? 일년내내 놀다가 이 마을 저 마을 돌아가며 훔쳐오면 그만이지. 또 일년내내 애써 농사지은 벼를 농민들이 밤새 어떻게 지키겠는가? 그렇게 되면 사회의 기본질서를 훔친 것이고 사회의 질서가 무너지면 그것은 사회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의 판단은 그러했다.
가진 사람에게 금송아지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일 만큼 작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농부에게 볏단은 목숨과도 견줄 만큼 전부였을 것이다.
경찰서 주차장을 건조장으로 내어 준 것도 농심과 농산물에 담긴 가치를 무겁게 여기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곳곳에서 벼, 고추, 참깨, 인삼 등을 훔쳐가는 농산물 도둑이 횡행하고 있다. 만약 도둑질에 등급을 매긴다면 농산물을 훔치는 짓은 하등급 가운데서도 최하등급에 속할 것이다. 농산물 도둑은 어떻게든 막고 끝까지 잡아서 혼쭐을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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