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의 역사와 왕실의 이야기가 배어 있는 부여에는 부소산, 백마강, 낙화암, 정림사지 오층석탑 등 백제 문화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문화유적지가 곳곳 산재해 있다. 사진은 노을지는 궁남지 풍경. |
부여는 가는 곳 마다, 닿는 곳 마다 전설이 산재해 있고, 백제의 역사와 왕실의 이야기가 배어 있는 역사와 문화, 자연과 사람이 진정 조화로운 곳이다. 1500년의 해와 달을 떠나보냈던 부소산, 백마강, 낙화암, 정림사지 오층석탑, 백제를 오늘의 언어로 되살려낸 백제문화단지 등은 부여 여행의 백미다. 올 가을 최고의 가족 여행지인 부여에서 찬란했던 백제의 문화예술을 감상하며 역사의 진한 감동을 느껴보자. <편집자 주>
1. 현존 유일 백제문화단지와 부소산성
▲ 부소산 낙화암 |
또한, 백제문화단지에서 백마강을 건너면 삼천 궁녀의 전설을 품은 낙화암을 필두로 백제의 마지막 왕성인 부소산성은 백제시대 축조된 포곡식 산성과 통일신라시대 축조된 2개의 테뫼식 산성으로 되어 있으며, 평상시에는 궁성의 궁원으로, 전쟁시에는 도성의 방어 거점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망국의 한을 온몸으로 견뎌낸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인공 연못인 궁남지 등에서 백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 '검이불누 화이불치' 천년고찰 무량사
▲ 천년고찰 무량사 |
무량사는 통일신라 때 범일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2층 구조의 극락전은 조선 중기의 건물로 시기적으로는 뒤에 창건됐으나 백제의 색이 짙다.
특히,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매월당 김시습이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이 되자 불문에 귀의하여 말년을 무량사에서 은거하다 세상을 등진 곳이기도 하다. 무량사의 영정각에는 그의 초상화가, 일주문 근처에는 부도가 남아 있다.
3. 유홍준 前 문화재청장의 제2 고향 '반교마을 돌담길'
▲ 반교마을 돌담길 |
최근 발간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부여편에는 폐가를 헐고 방하나 부엌하나 있는 세칸 기와집을 '휴휴당'이라는 당호를 붙였는데 막상 5도2촌을 하다 보니 여름이면 풀을 뽑고, 봄, 가을이면 밭에 나가 나무를 가꾸고 겨울이면 장작을 패야하는 등 쉬는 '휴휴당'이 아니라 쉬는 걸 쉬는 집이 됐다는 글을 읽다보니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려 진다.
4. 1000살 먹은 은행나무에 노란 은행이 주렁주렁
▲ 주암리 1000살 은행나무 |
주암리 은행나무는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할 때, 신라가 망할 때, 고려가 망할 때의 3차례의 난리 때마다 칡넝쿨이 감아 올라가는 재난을 겪었다고 전해져 온다.
또한 고려시대 숭각사 주지가 암자를 중수할 때 대들보로 쓰기 위해 이 은행나무의 큰 가지 하나를 베어 가다가 급사하였으며 사찰도 폐허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마을의 신령한 나무로 보호되어 왔으며 전염병이 돌 때 이 마을만 화를 면했다 하여 영험한 나무라고 하여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음력 1월 2일 행단제(杏檀祭)를 지내고 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보호수다.
5. 황금새 전설이 함께하는 임천면 대조사와 성흥산성
▲ 임천면 대조사 |
산성 아래로 내려오면 황금새의 전설이 전해오는 대조사를 만날 수 있다. 사찰을 신축할 때 신기하게도 큰 새가 날아와 울면서 주위를 밝혔다고 하여 절 이름을 황금빛 큰 새가 나타났다하여 '대조사'라고 짓고, 관세음보살이 나타난 큰 바위에 석불을 조성했다고 전해 오는 곳이다.
전설의 새는 이제 없지만 높이 10m가 넘는 석조보살입상과 꽃사슴 해탈이가 대조사를 찾는 이를 반기고 있다.
부여=여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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