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기암 종횡무진 절경의 파노라마

계곡·기암 종횡무진 절경의 파노라마

'괴레메' 말뜻은 '보여서는 안되는 것'… 거대 지하도시 '데린쿠유' 4만명 거주 크리스트교도 핍박피해 동굴에 은식, 석굴교회 30여개… 다양한 벽화 보존

  • 승인 2011-10-31 14:12
  • 신문게재 2011-11-01 9면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한성일 기자의 성지순례 탐방기-그리스·터키를 찾아서] 19. 터키의 성지들을 찾아서-카파도키아편 (중)

▲ 괴레메 우치히사르 전경
▲ 괴레메 우치히사르 전경

한국가톨릭성지순례단(단장 김정수 바르나바 천안신부동성당 주임신부)이 터키의 카파도키아에 도착해 성지를 순례하면서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를 지난주에 이어 담아본다.

▲카파도키아 형성과정

터키의 카파도키아는 세계유산으로 터키 관광의 백미로 일컬어진다. 자연과 역사, 인류가 빚어낸 조화가 어울려 이 곳 카파도키아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류 역사가 공평하게 조우를 한 곳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 바위 표면에 수많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것이 비둘기 집
▲ 바위 표면에 수많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것이 비둘기 집
카파도키아는 중앙 아나톨리아 고원의 중앙부에 펼쳐져 있는 커다란 기암지대로,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독특한 파노라마다. '자연'이라는 이름의 조각가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풍경을 만들어내고, 여기에 사람도 동참해 조각을 했다. 종횡으로 펼쳐진 다채로운 계곡과 '요정의 굴뚝'이라 불리는 기암들을 비롯해 가는 곳마다 동굴 주거지가 나타난다. 이 동굴에서 숨어 지내는 생활을 반복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크리스트교 신앙 때문이었다. 그래서 터키인들은 이 땅을 '괴레메(보여서는 안되는 것)'라고 불렀다. 인구는 약 7만3000명으로, 해발 1200m에 위치해 있다. 주요 볼거리가 동서 20㎞, 남북 40㎞의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어 최소한 이틀 이상을 둘러봐야 한다. 거대한 '페리바자'(요정의 굴뚝)가 우뚝 서 있는 괴레메 계곡의 경관은 마치 다른 행성에 와 있는 듯 신비롭기만 하다. 이 곳에서는 1시간 동안 열기구를 타고 기암괴석을 즐길 수 있다.

버섯처럼 생긴 바위가 불쑥 솟아 올라 있는 것도 재미있는데, 이러한 것이 모두 자연의 힘에 의해 자연스레 생성된 것이라 조물주의 신비에 감탄하게 된다. 이런 지층은 수억년 전에 생긴 엘제스산의 분화로 인해 만들어진 것으로 화산재와 용암이 수백m 씩 거듭 쌓인 끝에 응회암과 용암층이 형성됐다. 그 후에도 바위 부분은 비바람에 깎여 침식이 계속되고, 지금은 단단한 부분만 남아 특이한 모습의 바위가 됐다.

카파도키아 지방은 히타이트 시대부터 교역로의 요충지로 번영했고, 4세기 전후부터는 크리스트교 수도사들이 응회암에 동굴을 파고 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신앙을 계속 지켜내면서 동굴내의 천장과 벽에 멋진 프레스코화를 남겨놓았다. 해발 1000m를 넘는 고원 안쪽 깊은 바위산에서 올곧은 신앙생활을 유지해 나갔던 그들의 자취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지역이다.

▲카파도키아의 역사

카파도키아가 자랑하는 아름다운 경관의 시작은 타우로스 산맥이 융기한 600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융기 후 생겨난 동쪽의 에르지예스, 남서쪽의 핫산 등의 화산은 오랜 기간에 걸쳐 화산재를 퇴적시켜 응회암층을 형성했다. 핫산은 해발고도 3000m급 화산으로 카파도키아의 신기한 경관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이 곳을 흐르는 빗물과 눈의 침식이 기이한 풍경을 만들어 냈다. 카파도키아는 100만년전 화산 폭발 이후 흘러내린 용암이 식으면서 사람들이 처음 정착하기 시작했다. 타우르스 산맥을 타고 코냐로 가는 길목 북쪽 고원에 위치한 카파도키아는 1965년 발굴이 이뤄지면서 약 9000년에서 1만년 전으로 추정되는 신석기 시대인의 흔적을 발견했다.

▲ 괴레메 계곡
▲ 괴레메 계곡
기원전 1200년경 히타이트 제국이 붕괴되고, 그 혼란이 진정되자 기원전 600년경에는 메디아, 리디아 양 왕국이 경계를 다퉜다. 이들을 모두 흡수한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사람들은 이 곳의 특산품인 사라브렛 종의 말에서 '아름다운 말'이라는 뜻의 '카파도키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원전 17세기에 로마가 이 일대를 흡수했는데 고대의 카파도키아는 아주 광대한 지역을 지칭했다.

로마시대 후기에 널리 퍼진 크리스트교는 황제의 탄압을 받았고 이를 피해 도망친 크리스트교도들은 이 계곡에 숨어 살았다. 7세기가 되자 이슬람 세력이 침입했는데 동굴 교회와 지하도시 대부분은 이 시대에 아랍의 공격을 피해 도망친 크리스트교도들이 만든 것이다. 11세기 이후 셀주크 투르크 시대에는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가 공존했지만 1515년 오스만 제국 시기에는 크리스트교도들이 그리스 등으로 이주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팔레스타인에서 크리스트교를 제창한 것이 그의 나이 30세 때였다. 로마에서 파견된 예루살렘의 통치자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했다. 비난받은 예수는 팔레스타인에서 새로운 땅을 발견했다. 예수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이 곳 저 곳에 크리스트교를 전파했고 중앙 아나톨리아 지역에 급속하게 전파돼 많은 교회와 수도원이 지어졌다. 기도를 드리던 최초의 장소는 일반적으로 조그마한 수도원 형태였는데 일종의 피난처였다.

찾기 힘든 계곡 내에 수도원이 만들어진 이유는 크리스트교가 당시에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기 310년경 로마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시민들의 혼란이 일자 콘스탄틴은 그들을 억압하고 스스로 로마제국의 통치자가 됐다. 서기 313년 콘스탄티노스가 왕이 되자 로마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현재의 이스탄불)으로 옮기면서 크리스트교는 자유로워졌다. 크리스트교의 인정 이후 카파도키아는 종교가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종교적 영향권에 들어가 많은 교회와 수도원들이 신설됐다.

▲괴레메 야외박물관의 교회들

▲ 동굴 교회 속의 예수벽화
▲ 동굴 교회 속의 예수벽화
수천년 전 에릭시에스산의 화산이 분출될 당시 용암은 대략 2만㎞까지 흘러내렸다. 이후 화산 활동이 멈추고 이 지역은 수백년간 다양한 풍파를 거치면서 침식 작용이 이뤄졌다. 이 결과 토양이 마모되고, 바위를 깎아내리게 된다. 작은 암석덩어리들은 거칠고 귀찮은 존재로 여겨지면서 보다 큰 바위 꼭대기에 남아있었고, 오늘날의 우아한 수도원들을 형성시켰다. 괴레메 계곡은 5~12세기에 걸쳐 박해를 피해 온 크리스트교도들이 만든 30여 개의 석굴 교회가 모여 있는 곳이다. 괴레메 야외박물관의 암굴교회들은 평지의 교회와 똑같은 모양으로 된 것도 있고, 천장이 둥근 것도 있다. 각각의 교회에는 벽화와 터키어 명칭이 붙어 있고 보존상태가 좋은 몇몇 교회에서는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다. 내부 그림은 십자가를 본뜬 소박한 것에서부터 성서 속의 장면이 상세히 표현된 것까지 다양하다. 이중 성 바실 교회는 11세기경의 것이다. 벽화는 소박한 인상의 성모자상을 비롯해 성 디미트리우스와 말을 탄 성 요한, 성 테오도르가 묘사돼 있다. 이중 성 요한은 카파도키아의 수호성인이었다.

사과의 교회는 4개의 기둥으로 지탱되는 돔과 옆면을 고정시키는 배랑을 갖고 있는 구조가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 소피아의 건축 방식을 답습한 것이다. 벽에는 붉은 흙을 도료로 해 묘사한 십자가와 기하학 문양, 그 위에 글진 색채가 풍부한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다. 중앙 돔에는 파란색을 배경으로 한 예수가 그려져있고, 아치에는 사도들이 그려져 있다. 이 사과나무 교회란 명칭은 천사 가브리엘이 가지고 있는 지구가 마치 사과와 비슷해 지어진 것이라고도 하고, 근처에 사과나무가 있었다는 설도 있다. 성 바르바라 교회는 돔과 2개의 기둥, 십자형의 본당으로 구성돼 있다. 입구 맞은편 벽에 성 바르바라가 그려져 있다. 다른 벽화는 붉은 흙 도료의 단순한 기하학적 문양으로 우상 숭배가 금지된 8세기에 제작된 것이라는 설이 있지만 이 장식은 각 시대 공통문양이라는 반대설도 있다. 뱀의 교회는 독특한 통 모양의 천장을 장식하는 프레스코화가 말을 타고 뱀(용)을 퇴치하는 성 요한과 성 테오도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반대 부분에는 남녀의 생식기를 둘 다 가지고 있는 성인 오노폴리오스가 그려져 있다. 13세기에 제작된 작품이다. 일대에는 많은 수도원이 있었기 때문에 이 교회의 꼭대기층에는 빵을 굽는 가마, 바위를 깎아 만든 탁자가 있는 식당 등이 있어 수도사들의 생활을 가늠할 수 있다. 이외에도 괴레메 야외박물관에서는 성모마리아의 교회, 엘 나자르 교회, 어둠의 교회, 샌들의 교회, 맞물림 쇠의 교회 등을 만날 수 있다.

▲괴레메 파노라마와 우치히사르

▲ 우치히사르 전경
▲ 우치히사르 전경
바위가 볼록볼록 솟아 있어 웅대한 경관을 즐길 수 있는 괴레메 파노라마는 우치히사르에서 괴레메로 향하는 길목 오른쪽에 있다. 계곡 한쪽면에 하얗고 매끄러운 바위 표면의 물결이 펼쳐져 있어 절경을 이룬다. 또 길 건너 반대쪽의 밭 너머로 보이는 지층의 모양도 아름답다. 비둘기 집이 가득한 높은 바위봉우리가 있는 곳이 우치히사르다. '뾰족한 바위'라는 뜻을 지닌 우치히사르는 한 개의 바위로 된 성채가 중심을 이룬다. 성채의 내부는 올라갈 수 있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괴레메 파노라마가 가히 절경이다. 성채 정상에서 보는 전망 역시 일품이다. 다른 행성에 온 듯한 풍경은 신기한 파노라마다. 정상에서는 많은 무덤 구멍을 볼 수 있고, 계곡 바닥에는 포도밭과 살구밭이 펼쳐져 있다. 이 바위 표면에는 수많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것은 비둘기집이라고 불리는 비둘기 둥지로, 주민들은 예부터 비둘기 똥을 모아 포도밭의 비료로 사용했다. 화산성으로 토지가 메말라 있는 카파도키아에서 살기에 알맞은 지혜다. 하얀 창틀과 암벽에 그려진 생명의 나무와 기하학적인 문양은 비둘기의 주의를 끌기 위해 페인트칠을 한 것이다. 이 거대한 바위 주변에는 작은 마을이 형성돼 있고 펜션 등 숙박시설도 많다.

▲지하도시

카파도키아에는 많은 지하도시가 흩어져 있는데 그중 카이막클르와 데린쿠유의 규모가 가장 크다. 36개가 넘는 지하도시들은 크리스트교인들이 서기 6~7세기부터 아랍부족의 핍박을 피하기 위해 그들의 은신처는 물론이고 그들만의 종교를 전파하기 위한 비밀 장소로 이용돼 왔다. 암굴 주거지라고는 하지만 이 곳은 개미집처럼 지하로 뻗어 있는 지하도시다. 동굴 같은 통로를 내려가면 끝없이 미로가 뻗어있어 빛도 들지 않는 지하에서는 방향감마저 잃게 된다.

지하도시는 기원전 400년경의 기록에도 도시의 모습이 기록돼 있을 정도로 오래된 것이다. 내부의 통기 구멍은 각 층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고, 예배당, 교단이 있는 학교의 교실, 침실, 주방, 식료품 창고에 천장 등이 있어 대규모의 공동생활이 영위됐음을 알 수 있다. 곳곳에 적의 침입에 대비한 둥근 돌이 길을 막을 수 있도록 놓여 있다. 전구도 달려있지만 몸을 구부려야만 들어갈 수 있는 장소도 많다. 지하도시중 대표적인 데린쿠유는 4만명, 카이마크르에는 2만명이 살았다고 한다. 각각 지하 8층, 지하 5층까지 견학할 수 있다.

데린쿠유는 '깊은 우물'이라는 뜻으로 직경 1m 남짓한 수직으로 된 구멍이 지하 구조를 관통하고 있다. 이 구멍은 모든 층에서 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고 통기구 역할도 담당했다.

이 곳에서 발견된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독수리 조각상은 앙카라의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 앞 정원에 전시돼 있는데 로마 시대의 것이지만 양식은 히타이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써 크리스트교도가 오기 전부터 이 곳이 지하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데린쿠유는 지하도시와 그 속의 교회들, 정신병원, 풍요로웠던 역사 등으로 최근에야 알려지기 시작해 매일 수천명의 관광객이 찾아드는 곳이다. 세계 9대 불가사의에 속한다. 지하도시는 평균 1만명 정도가 살 수 있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해 10만명이 30년 동안 작업했다고 하는데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이 방대한 규모의 공사를 하는데 필요했던 인력과 시간을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터키 카파도키아=한성일 기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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