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복 옥천 |
옥천군농민회, 민주연합노조 등 단체들은 지난 28일 박준병 전 국회의원이 옥천군민아카데미 평생교육 강사로 초빙된 것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박준병씨는 옥천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전두환 노태우와 함께 군사반란의 핵심이라는 역사적 혐의가 있는 인물이며, 광주민주화운동의 광주5적으로 지목돼 역사적 심판이 필요한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또 “그를 초빙한 김영만 군수도 경솔한 역사관을 갖고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옥천에서 만큼은 이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주민들이 더 많은 듯하다.
그것은 박준병씨가 옥천발전의 초석을 닦은 인물이라는 점이다. 주민들은 “지금의 옥천은 대전과 4차선이 뚫리면서 도시화가 시작된 것”이라며 “이 4차선을 현역시절에 밀어붙인 인물이 그사람”이라고 말한다.
현재 옥천은 옆의 영동 보은에 비해 인구도 제일 많고 도시화가 빨랐으며, 현재 일자리 생산공장도 월등하다.
이 4차선은 1987년 대선주자로 까지 떠오르던 박준병씨가 자신의 고향인 옥천에 국가예산을 한꺼번에 가져와 공사기간이 1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옥천 영동간 4차선은 7년 걸렸고, 보은 청주간 4차선이 12년 걸린 것과 비교해 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1987년 옥천으로 이전한 옥천조폐창 또한 그의 작품이었다. 당시 부여로 결정된 것을 옥천으로 유치해 1000여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지금 경북 경산으로 빼앗긴 것도 그와 같이 힘 있는 인사가 없어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평가 되듯이 과거의 정치적행보와 경제적 공로는 구분되어야 한다.
그가 어떤 길을 갔던 옥천경제를 위해 큰 공헌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