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바쳐 지킨 백제의 충절 후세에 널리 알려야”

“목숨바쳐 지킨 백제의 충절 후세에 널리 알려야”

5천 결사대로 5만 신라군에 맞서다 전사 충효정신 강조한 계백이야기 교훈적 전략적 요충지 아닌 벌판서 싸운 이유와 당시 논산지역 지형조건 등 추가 연구 필요

  • 승인 2011-10-26 19:03
  • 신문게재 2011-10-27 4면
  • 정서영·논산=이종일 기자정서영·논산=이종일 기자
●중도일보·논산시 학술세미나 - 계백의 충절과 황산벌전투의 의미

▲ 중도일보와 논산시가 주최한 '계백 황산벌에서 다시 깨어나다'라는 주제의 학술세미나가 26일 백제군사박물관에서 열려 토론자들이 계백장군의 충절정신과 황산벌전투에 대한 내용으로 토론회를 갖고 있다./이민희 기자 photomin@
▲ 중도일보와 논산시가 주최한 '계백 황산벌에서 다시 깨어나다'라는 주제의 학술세미나가 26일 백제군사박물관에서 열려 토론자들이 계백장군의 충절정신과 황산벌전투에 대한 내용으로 토론회를 갖고 있다./이민희 기자 photomin@

일시 : 2011년 10월 26일(수) 오후 2시
장소 : 논산 백제군사박물관
주최 : 논산시, 중도일보
주관 : 충남도역사문화연구원, 충청사회조사연구소
사회 : 강종원 충남도역사문화연구원 연구위원

▲ 서오선 백제문화재연구원장(좌장)
▲ 서오선 백제문화재연구원장(좌장)
중도일보가 창간 60주년을 기념해 '계백! 황산벌에서 다시 깨어나다!!'란 주제로 학술행사를 개최했다.

논산시와 공동으로 마련한 이번 행사에서는 논산의 상징 인물인 계백의 충절과 황산벌 전투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하고 문화콘텐츠로 육성하기 위한 세미나와 특강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이날 행사의 1부 순서로 충남역사문화연구원과 충청사회조사연구소가 주관한 세미나의 주제 발표 및 토론 내용을 지상중계한다. <편집자 주>


◇주제발표

▲양기석 충북대 교수=660년 7월 9일 백제와 신라간에 벌어진 황산벌전투는 백제의 운명이 걸린 대회전(大會戰)이었다는 점에서 삼국 항쟁사상 큰 의미를 가진다. 이 전투에서 백제의 계백은 5000 결사대를 이끌고 김유신이 이끄는 5만의 신라군에 대항해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양기석 충북대 교수(주제발표)
▲ 양기석 충북대 교수(주제발표)
우리는 황산벌전투에 대해 많은 궁금한 점을 갖고 있다. 먼저 황산벌전투의 주역인 계백은 과연 어떠한 인물이며, 충절이 높은 인물로 후대까지 오랫동안 존중을 받아 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가 겨우 5000의 결사대로 10대 1의 열세인데도 불구하고 굳이 황산벌에서 신라의 5만 대군을 막을 수밖에 없는 사정은 무엇이었는가? 신라군은 어떤 통로로 황산벌에 당도하였으며, 또한 백제의 동쪽 변경지대를 관통해 오면서 백제로부터 이렇다 할 저항 한번 받지 못하고 곧바로 황산벌에 당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규모의 신라군이 왜 황산벌을 거쳐 백제를 침공했는지, 논산지역이 갖는 지정학적 조건도 궁금하다.

아울러 나당연합군의 대규모 군사적 공세에 대한 백제의 대비책은 무엇이었을까? 나아가 황산벌전투가 한국고대사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진 전투였는가 하는 점 등 많은 의문점을 밝혀주기에는 관련 자료가 너무 소략하고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백과 황산벌전투에 대한 연구는 적지 않은 성과를 축적해 왔으며,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 수락산 기슭에 있는 계백의 묘에 대한 학술조사와 정비가 이루어지면서 1989년 12월 29일 충남도지정 기념물 제74호로 지정됐다. 2005년에는 사당인 충장사를 건립하고 이와 함께 백제군사박물관이 개관되면서 이곳이 백제의 군사와 호국이라는 주제를 가진 테마박물관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하게 됐다.

계백의 충절은 비단 백제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인들을 비롯하여 후대 사람들에게 충절의 화신으로서 높이 추앙되었음을 볼 수 있다. 황산벌전투 시에 흠순이 그의 아들 반굴에게 “신하가 되어서는 충성이 제일 중요하고, 자식이 되어서는 효가 제일 중요하다. 위급한 때를 당하여 목숨을 바치면 충과 효를 함께 이루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충효를 강조한 것은 계백이 보여준 충절의식과는 서로 상통하는 덕목이다.

『삼국사기』 권47, 열전7에는 국가에 충절을 바친 인물들이 실려 있는데, 계백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라인들이다. 계백이 백제인으로서 열전7에 포함된 것은 국적과 시기를 초월하여 살신성인한 그의 충절을 높이 평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계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그의 충절과 무용(武勇)을 기리기 위해 연산의 충곡서원과 부여의 부산서원에서 그를 주벽(主壁)에 배향하였으며, 부여 용정리 망월산에는 의열사(義烈祠)가 건립돼 백제 말기 3충신과 고려 후기의 이존오를 함께 제사 지내고 있다.

계백의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와는 달리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사람도 있다. 조선 초기 성리학자인 권근(1352~1409)은 그의 문집 『양촌집』에서 그를 가리켜 “첫째 무도하고, 둘째 도의에 어긋나고 잔인하다”고 평했다. 게다가 “먼저 사기(士氣)를 떨어뜨려 싸우기도 전에 남에게 굴복하게 됐다”고 비난을 쏟았다. 권근이 말하는 것은 단지 전투에서의 패배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을 제 목숨인 양 독단적으로 처리한 것은 인간적인 도리의 측면에서 지나친 처사였던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렇다고 계백의 충절 자체를 폄하하지는 않았다. 반면 서거정(1420~1488)이나 안정복 등 조선시대의 성리학자들은 계백을 충절의 표본으로 여기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해 오자 백제는 전략적 요충지인 기벌포와 탄현을 잃고 우왕좌왕한 끝에 결정된 방어책은 달솔 상영의 계책을 좇아 원정해 온 당군이 피로해지기를 기다리는 한편 신라군에 대해서는 일부의 병력을 파견해 예봉을 꺾는 기동방어 전략을 채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전략은 나당연합군에 비해 훨씬 적은 병력으로 동쪽과 서쪽에서 침공해 오는 양면의 적을 동시에 대처해야 하는 백제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계백과 성충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백제사회에서 정절과 충절의 덕목이 널리 유포되어 실천적 윤리도덕으로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절과 충절의식은 중국의 경전과 사서의 보급이나 학교 교육을 통해 널리 유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토론

▲ 윤일영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토론)
▲ 윤일영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토론)
▲윤일영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군사사학자들이 고대전투를 연구하면서 병력을 제시할 경우에는 반드시 전투서열을 먼저 실증하고 이를 기초로 병력을 제시한다. 따라서 신라가 황산벌에 5만명을 투입하였다면, 대당병력은 얼마, 상주정병력은 얼마, 하주정 병력은 얼마이므로 이를 합하면 5만명이라는 식의 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군사사학자들이 고대전투를 연구할 때 행군 기동로를 제시할 경우에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쳐 수식으로 증명해야 한다. 첫째, 신라군의 가급부대의 주둔지, 중간집결지, 최종 목적지를 먼저 실증한다. 둘째, 주둔지 또는 중간 집결지에서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는 접근로를 판단한다. 셋째, 각 접근로별 거리를 계산한다. 넷째, 신라군의 일일 행군속도 및 시간당 행군속도를 계산한다. 다섯째, 신라군이 평균행군속도로 각 접근로를 사용할 경우 황산벌에 도착할 수 있는 일자를 산출한다. 여섯째, 접근로 가운데 7월 9일 날 도착하는 접근로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신라군의 행군기동로다.

이런 수식에 따라 소정방이 거느린 13만 명 중 전투병력과 비전투병력(水兵)을 제시하고 행군기동로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토론)
▲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토론)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5000의 결사대로 굳이 황산벌에서 신라의 5만 대군을 막을 수 밖에 없는 사정에 대해 “신라군의 남천정으로의 이동과 나당연합군의 덕물도 회합, 이로 인한 당시 백제의 주력부대는 북방지역에 집중 배치, 그리고 사비도성을 함락시 의자왕 일행이 북방 웅진성 도주한 사례에서도 짐작 가능, 북방에 대부분의 병력을 단시간에 사비도성에 집결시키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근거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외에 백제군 주력이 북방에 배치돼 있었다는 증거나 사례가 더 있는지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탄현을 진산의 숯고개(炭峙)로 보고 영동~금산~진산(숯고개)~벌곡면 도산~연산 황산리로 보는 견해(성주탁)를 지지하고 있는데, 그 근거를 금산지역은 신라가 영유한 곳으로서 연산과는 불과 25㎞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가까운 지역이기 때문이라 했다.

금산~진산(숯고개)~벌곡면 도산의 코스라면 아주 작은 병력으로도 큰 병력을 막을 수 있는데, 계백은 이러한 전략적으로 용이한 지점이 아니라 넓은 황산벌에서 신라군을 막으려고 했는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겠다.

▲ 이수광 『백제의 마지막 혼 계백』저자(토론)
▲ 이수광 『백제의 마지막 혼 계백』저자(토론)
▲이수광 『백제의 마지막 혼 계백』 저자=백제는 당시 어떤 상황이었을까. 사실 계백장군이 황산벌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다.

부인과 자녀들을 살해하고 5000 결사대와 신라군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기 때문에 더욱 비장한 맛이 있다. 그런데 다른 장군들의 전투는 기록에 남지 않고 계백의 황산벌 전투만 유독 기록에 남은 이유가 무엇일까. 백제 의자왕은 삼국사기나 전설에 나오는 것처럼 폭군이었을까. 의자왕의 성격을 나타내는 기록은 많지 않다.

백제의 당시 상황과 삼한을 통일하고자 하는 김유신의 대업을 역사적 사실로 충실하게 그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우리는 역사를 읽을 때 기록되지 않은 여백까지 읽어야 한다.

계백은 충절에 대한 높은 기상을 가졌다. 남북이 대치하고 일본과 중국이 포진하고 있는 지형학적 상황에서 우리 젊은이들에게 백제의 혼, 계백의 충절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인위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문화콘텐츠로 가능하다. 우수한 문학작품이나 영상 작품들이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제는 어떤 전통이 있는가. 백제는 충절과 절개의 전통을 살릴 수 있다. 계백에게서 충절을, 도미부인에게서 절개를 살필 수 있다. 이러한 소재를 확대 재생산하면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류제협 논산문화원장(토론)
▲류제협 논산문화원장(토론)
▲류제협 논산문화원장=발표자는 계백장군이 가족의 목숨을 거두고 전장(戰場)에 나온 것에 대해 더할 수 없는 충절정신의 실현으로 미화했다. 계백장군의 나라를 위한 충절정신은 오늘날 우리들도 높이 사며, 조금이라도 사사로운 감정이나 다른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 가족의 목숨을 거둔 것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비판적 시각을 가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지금 전장에 나가지만 이겨서 다시 돌아와 가족을 만날 가능성이 없고 나도 죽으러 가니 너희들도 치욕적 삶을 살지 말고 함께 죽자'라는 자포자기의 표출로 볼 수 있다.

이는 함께 출전하는 5000 결사대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장에 나와 5000 결사대를 모아놓고 “옛날 구천이 5000의 군사로 오나라의 70만 대군을 물리친 사례도 있으니 우리들도 사력을 다해 싸워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자”라고 훈시하는 대목과도 서로 모순이다.

물론 1400여 년 전의 일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나라에 대한 충성은 나라가 나와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기에 가능한 것이지, 나와 가족은 무조건 나라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백제 사람들의 충의 정신이 일반화 돼 있었다는 사례에 대해 『주서』, 『수서』, 『신당서』 등의 기록 및 성충과 도미부인의 예를 들면서 백제 사람들이 충의 정신이 일반화 돼있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렇게 백제의 모든 백성들이 충절정신으로 정신무장이 돼 있었다면 5000 결사대와 함께 황산벌에 나왔다가 포로로 잡힌 좌평 충상과 상영 등 20여인이 사로잡혀 항복하였다는 대목은 어찌 설명 할 것인가? 백제인들의 충의 정신이 그렇게 투철했다면 저들도 최후의 1인까지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어야 맞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정서영·논산=이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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