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이사회의 안건 보류 결정은 서남표 총장 측이나 교수협의 주장 모두에 '페널티'를 준 것으로 해석된다.
이사회는 외면적으로 서 총장의 개혁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뉘앙스를 비쳤지만 내홍의 역학구조를 볼 때 전폭적 지지를 보낸 것은 아니라는 게 학교 안팎의 대체적 견해다.
▲서 총장, 재신임 혹은 불신임=서 총장은 이사회에 혁신위 3개 안건을 상정했고, 학교 측은 어느정도 이사회 통과를 자신했으나 이사회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학교 측은 “이사회 논의 결과가 카이스트 거버넌스와 향후 발전방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시간을 갖고 충분히 검토하자는 고심 어린 판단”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스타 총장으로 이사회에서 전폭적 지지를 얻었던 서 총장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은 게 사실이다.
서 총장을 재신임했다고 보기에는 어딘지 찜찜하다. 한번 더 기회를 줄테니 내홍을 조기 수습해 보라는 경고성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읽힌다. 또, 교수협에 약속한 안건 3개 모두가 사실상 기각됨에 따라 학교 구성원들에게 면(面)이 서지 않게 됐다. 서 총장은 당장 교수협의 사퇴 압박을 어떤 식으로 해결할지 고민거리다. 이사회의 결정을 갖고 논리와 명분을 만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교수협이 이를 수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내홍이 더 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교수협도 '내홍 피로'=교수협 측도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서 혁신위 안건을 받아주기를 내심 크게 기대했는데 3건 모두 보류함에 따라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게됐다.
카이스트 구성원 모두가 서 총장과의 내홍에 '피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홍 피로'가 확산돼 있음을 교수협 측도 알고 있다. 서 총장 사퇴 촉구 카드도 수차례 써서 '약발'도 크게 약화된 점을 감안하면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교수협 내부에서도 강·온건파들의 이견이 맞설 가능성도 적지 않다. 교수협 지휘부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교수협 역시 이사회가 일정선을 넘는 주장은 받아주지 않겠다는 사실상의 경고를 보낸 것이어서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이사회를 대상으로 비판 내지, 이사회 타격 전술을 쓰기에는 여론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사회 논의 또 보류=이사회에도 적지않은 책임론이 일고 있다. 학교 내홍 사태가 6개월 이상 됨에도 확실한 선을 그어주지 않고 있고, 서 총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을 주문하는 상황이다. 또 이번 이사회 안건 가운데 이사선임절차와 명예박사 학위 수여 제정 안건은 이사들 모두가 이해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사회 개최 전부터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이사들은 역시 논의를 다음 이사회로 미루기로 했다. 이사회 구성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린다는 점에서 혁신위와 서 총장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지난 8월 이사회에 이어 두번째다. 그렇다고 이사회가 대안을 만들어내지도 않았고, 추후 논의만을 결정해 언제 이 문제가 다시 논의될지는 미지수다.
이래 저래 카이스트 내홍은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고 양측의 소모전이 계속될 전망이다.
오주영 기자 ojy8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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