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겸훈 한남대 입학사정관 |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후 머무를 사저 건립을 위해 내곡동에 매입했었던 사저터는 42억8000만원(2142㎡)으로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대통령 사저 2억 5900만원(1157㎡)에 비해 규모는 두 배이고 가격은 16.5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만약 이대로 사업이 추진되었다면 역대 대통령들의 사저 중 가격이나 규모면에서 가장 컸을 것이다. 이 사업이 백지화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청와대가 내곡동 사저건립사업을 백지화함으로써 모든 것이 종결되고 예전과 같이 아무일 없었던 것으로 돌아갈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그 이유는 내곡동 사저터 매입과 관련하여 명백하게 거론되는 위법사실 4가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위법사실을 구체적으로 거명하면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편법증여, 지방세법위반 및 배임횡령 혐의 등이다. 분개스러운 것은 청와대의 주장을 모두 인정하더라도 대통령 사저건립사업이 이같이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되었다는 데에 대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심한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내곡동 사저 논란이 언론에 보도될 때 많은 국민들이 어리둥절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부라고 자화자찬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 여전히 귓전에 맴돌고 있었을 때였다. 때문에 국민들은 더욱 궁금해 했고 사실관계에 대한 해명을 당사자로부터 직접 듣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국민의 가슴 속에는 2007년 노무현 전대통령의 사저에 대한 '아방궁' 논란에 섣부르고 애매한 태도를 취했던 자신들의 무지와 비겁함으로 인한 깊은 상처와 함께 심리적 부채를 안고 있다. 이 경험 때문인지 몰라도 이번에는 매우 이성적 반응을 보이려 노력했던 것 같다. 이러한 국민들의 뜨거운 가슴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명박 대통령의 반응은 시쳇말로 참 쿨(?)했다. 이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뱉은 말은 “본의 아니게 사저문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게 되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였다. 그것은 육성도 아니고 청와대 대변인을 통한 서면형식으로 말이다. 아마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부의 행정수반만이 보일 수 있는 자신감이 아닌가 싶다.
이명박 대통령의 쿨한 해명으로 국민들의 의구심이 해소되고 논란이 사그라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럴 수 없고, 절대 그래서도 안 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내곡동 사저계획을 백지화 시켰다고 하여 이전까지의 추진과정에서 발생했거나 범했을지도 모를 범죄사실 자체까지 되돌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저질러진 행위가 범죄로서의 구성요건을 갖추었다면 비록 중단하고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하더라도 그 범죄사실 또는 범죄행위 자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1일 모경제일간지에서 조사한 국민의식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이 인생의 목표를 방해하는 요소에 대한 중복응답에서 43.3%가 '노력해도 성공이 어려운 사회'를 꼽았다. 우리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고, 내곡동 사저터 매입과정에서 제기되고 있는 4대 의혹사건은 그와 같은 불공정 사회를 조장하는 핵심적 요소들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이제는 더 늦기전에 도덕적으로 완벽한 대통령 스스로가 국민에게 시범을 보여줄 때다.
지금 세계는 불공정에 대한 분노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우리가 목도한 대학생과 학부모의 '반값등록금' 요구집회,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사태를 규탄하고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희망버스', 한국음식업중앙회의 '카드수수료 인하요구' 집회를 볼 때 우리 사회도 '분노 바이러스'가 확산되어가는 모습이다. 우리가 요구하지 않으면 그들은 절대로 스스로 알아서 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국민들이 좀 더 독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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