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도 그랬다. 철부지이자 때로는 애늙은이 같고 문제아이며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외로운 10대였다. 동주(라고 쓰고 ‘똥주’라고 읽는다) 선생님이 “얌마, 도완득”하고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걸핏하면 “얌마, 도완득”하고 불러대는 선생님이 영 마뜩찮다. 기초생활수급품을 받아가라고 반 친구들 귀에 다 들리도록 말하지 않나, 옆집 옥탑방으로 이사와선 생활수급품으로 받아온 ‘햇반’을 던지라고 하지 않나, 개념도 없어 보인다. 교회에 가서 “하느님, 똥주 좀 죽여주세요”라고 기도도 하지만, “얌마, 도완득”하고 이름이 불릴 때마다 조금씩 세상에 마음을 여는 자신이 느껴진다. 오지랖 넓은 선생님과 부딪히면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 완득이는 점차 땅에 발을 단단히 디디는 ‘청춘’이 되어 간다.
영화 ‘완득이’는 세상과 담을 쌓는 소심한 반항아와 그런 아이를 세상으로 끄집어내는 오지랖 선생님의 이야기다. 출간 3년 만에 70만부가 팔린 김려령 작가의 동명 원작을 생동감 있게, 더 재미있게 살려냈다.
“살아보니 세상이 다 대학이더라”, “가난한 게 쪽팔린 게 아니라, 굶어서 죽는 게 쪽팔린 거야”하는 귀에 쏙쏙 박히는 대사는 훌륭한 원작 덕분이다. ‘완득이’의 미덕은 단순히 방황하는 10대의 성장담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완득이와 동주 선생님 사이의 굵은 감정에 집중하면서 다문화가정, 장애와 빈곤, 교육과 청소년 문제를 극 안에 끌어들인다.
무겁지 않다. 이런 코드들은 김윤석과 유아인의 더할 나위 없는 호흡과 사회 소외계층을 등장인물로 설정하는 것으로 성공적으로 형상화됐다.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주변인물들이 처한 사회 현실을 자연스럽게, 소소하지만 촘촘하게 엮어낸 웃음이 유쾌하고 따뜻하다.
‘악덕교사’인지 ‘참스승’인지 헷갈리는 ‘똥주’를 맞춤옷을 입은 듯 넉살좋게 연기한 김윤석이야 워낙 연기 잘하기로 이름난 배우이니 그렇다치자. 유아인은 ‘발견급’이다. 때로는 철부지 같고 때로는 애어른 같고, 순진한 듯 까칠하고, 냉소적인 듯 따스한 완득이의 다양한 면모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체화해낸다. 그를 통해 완득이는 빛을 얻었고 캐릭터는 더 풍성해졌다.
원작을 따라가느라 사춘기 소년의 굴곡 많은 에너지가 드러나지 않고 가슴 죄는 사건도, 소용돌이치는 클라이맥스도 없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그러나 개성 강한 캐릭터가 빚어내는 감정의 밀도가 단단하고 아기자기한 상황이 주는 재미는 그런 약점을 커버하고도 남는다.
귀화했으니 분명 한국 사람인 여성을 피부색이 다르다고 목욕탕에서 쫓아내고, 가난이 범죄로 이어지고, 청소년 폭력이 사회문제가 되어 들끓고 있는 2011년 오늘, 그 도가니 속에서 길어 올린 한 소년의 건강한 성장담은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아무리 어려운 세상이라고 해도 우리의 청춘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들려주는 ‘청춘예찬’이기에.
안순택 기자 sootak@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