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난순 교열팀장 |
가을이면 언제나 다시 희망을 품고 살아있는 것들의 비밀을 찾아나선다. 여름내 진초록의 빛깔을 뽐내던 잎들이 붉어지거나 떨어지기 시작하는 어느날, 빛바랜 재킷을 걸친후 여행을 시작한다. 늘 하는 여행이지만 예사롭지 않은 예감에 사로잡힌다. 여행은 너무나 어렵고 불안감에 사로잡히지만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처럼 미래에 대해서도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르튀르 랭보는 불과 20세밖에 되지 않았을 때 그를 구원해 줬던 시(詩)와 영원한 작별을 하고 만다. 보편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에는 정신적 역동성이 너무 강렬해서 태양과 구름 속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본과 권력에 환멸을 느껴 '예술가와 이야기꾼의 아름답던 영광은 가라'며 죽을 때까지 남루한 일상에 허덕였다. 바람처럼 떠돌던 랭보의 삶은 생명력을 억압하는 이념이나 신비화를 거부하는 여정이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안개 자욱한 새벽녘의 플랫폼에 서 있는 건 언제나 생경하면서 안도감이 든다. 곧 내 육체는 현실적 감옥을 벗어나 햇빛과 공기와 서늘한 바람에 섞일 것이다. 정신은 내 존재의 정체성을 낯선 이방인들로 하여금 잠시나마 확인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릴 것이다.
혼자하는 여행에 익숙해진 지 오래됐다. 벗들과 함께 하다 어느날 약간의 망설임을 안고 홀고 여행길에 오른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 호기심을 타인에게 제지받지 않게 됐다는 기쁨을 알아버린 것이다. 낯선 도시의 사물은 인상의 풍경이 된다. 도시 뒷골목의 허물어져가는 담장, 루즈를 빨갛게 칠한 국밥집의 뚱뚱한 중년여인, 번화한 거리를 빠르게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여행자는 시간의 끈을 풀어놓고 도시의 풍경을 탐색하는 즐거움에 매혹당하는 자유를 만끽한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은 생각의 산파라고 했다. 그는 운송수단 가운데 생각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에 기차를 꼽았다. 개인적으로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감을 주는 무궁화호를 선호한다. 기차에 올라 의자에 몸을 파묻고 창밖의 지나가는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노라면 살아온, 살아가야 할 일들의 버거움이 차곡차곡 쌓였다 사라지는 쾌감을 맛본다. 기차 몸체와 레일의 이음새가 맞부딪칠 때마다 덜커덩 덜커덩하는 소리와 움직임에 몸도 리듬을 타면서 상념의 똬리가 술술 풀리곤 한다.
억새가 가을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날 즈음 해인사를 찾았다. 해인사를 둘러싼 오래된 소나무들은 햇빛 아래서 영원한 시간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장경판전에 모셔진 팔만대장경. 부처님의 말씀을 간직한 팔만대장경은 바람과 빛을 가르고 천년 세월을 한달음에 가로질러 지금 여행자와 조우하고 있다. 좌우이념의 대립이 극에 달했던 6·25전쟁의 와중에서 불타 없어져 버릴 뻔했지만 8만여 경판에 새겨진 현자의 진리는 너무도 담담해 보인다. 장경판전의 살창 사이로 들고 나는 가야산 계곡의 천년 바람은, 사소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의 위대함을 여행자에게 일러주고 있었다.
인류문명사에서 2000년간 물질적으로 진보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왜 인간은 점차 감정적으로 견디기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될까. 시인 허수경은 '살아내는 게 상처였'음을 고백하며 그녀의 열망을 억압하는 땅으로부터 탈출한다. 스스로 택한 유목민의 길 위에서 위안받을 수 있길 바랐지만 '아픈 저 정처없는 건들거림'은 멈추지 못한다. 허수경은 게르만족의 언어로 밥먹고 게르만족의 언어로 트로이의 파편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모국어로 시를 쓴다. 삶은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걸까.
탐욕의 시대 내가 극복해야 할 상처의 경계는 어디인가.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잠에서 깨어나면 소멸되는 악몽과 같은 것. 동트기 전, 남쪽 어디쯤 간이역에서 불타는 인내로 무장하고 서성이는 나를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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