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순 목원대 교직과 교수 |
하지만 그 어디에도 '잘 듣기 양성코스'는 없다. 아니, 사람들은 '잘 듣기'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도 하지 않을뿐더러 더욱이 깨어만 있으면 들리는 것을 노력해서 배워야 한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말을 잘하면 듣기는 따라오는 보너스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공자 왈 '말 하는 것은 3년이면 배우지만 듣는 것은 60년이 걸려야 겨우 배운다'고 했다. 사람 나이 60에 이르러야 이순(耳順), 즉 귀를 열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다 하니 보통 사람들이 남의 말을 제대로 '듣기'란 얼마나 어렵기에 그 옛날에도 공자가 듣기를 어렵다고 했을까?
세계적인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래리 바커와 키티 왓슨의 '마음을 사로잡는 경청의 힘', 그리고 일본에서 오랫동안 밀리언셀러가 되었다는 '말하고 듣기의 달인'이라는 책의 제1장은 모두 '말하기보다 듣기'로 시작된다. 말을 잘 하기 위해서 또 남을 잘 설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잘 들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서 남의 말을 듣기부터 배웠다. 어린 아기들이 하루 종일 귀 기울이는 것은 엄마 아빠의 말이다. 아기들이 잘 듣게 되면 말 따라 하기를 배운다. 학교를 다닐 때도 많은 시간 선생님의 말을 듣기만 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말하기가 익숙해지자 말할 기회만 생기면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나의 말부터 앞세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픽테토스와 제논도 인간의 말하기보다 듣기를 강조했다고 한다. 이들은 하나 같이 '신이 인간에게 한 개의 입과 두 개의 귀를 준 이유가 말보다 두 배의 듣기를 하라는 의미'라고 강조한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가 직장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 물어보자 공자는 '다견궐의 신언기여 즉과우 다견궐태 신행기여 즉과회 언과우 행과회 녹재기중의(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 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在其中矣)' 즉, '넓고 다양하게 여러 가지를 많이 듣고 그 중 의심스러운 것은 젖혀 놓고 나머지 분명한 것들만 신중히 말하면 실수가 적을 것이다. 넓고 다양하게 많이 보고 그 중 모호한 것은 젖혀 놓고 나머지 명확한 것들만 신중히 행동한다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결국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으면 직장은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남의 말을 들을 때 몇 가지 습관이 있다고 한다. 그 사람의 말을 무시하는 경우, 듣는 척만 하는 경우, 자기한테 필요한 부분만 선택해서 듣는 경우, 남의 말을 신중하게 들어주는 경우. 많은 사람들의 80%는 남의 말을 들을 때 앞의 세 가지 경우에 속하고 20%의 사람들만이 남의 말을 적극적으로 들어준다고 한다.
이쯤 되면 우리의 일상이 말하기보다는 듣기로, 행동하기 보다는 생각하기로 시작해야 함이 분명해졌다.
잘 말하기 위해서 잘 배워야 하는 것처럼, 잘 듣기 위해서도 잘 배워야 한다. 어릴 때부터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공감해주고 자신의 느낌을 잘 말해준다면, 살아가면서 부닥치는 수많은 인간관계의 문제들을 우리는 피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남의 말에 귀만 기울여도 산적하게 쌓인 난제들은 금세 해결될 것이다.
이 가을 가족끼리 오순도순, 친구끼리 사이좋게, 직장동료와 웃어가며, 애인과 다정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장단 맞추어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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