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브롤터해협을 상징하는 바위로 이루어진 타리크산. |
18세기에 지어진, 돌로 된 누에보다리로 유명한 론다의 어느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협곡을 지나 지중해의 요충지 지브롤터(gibraltar)에 도착한 것은 6월 10일 오후 3시 15분을 지나서였다.
한낮의 태양이 몹시 뜨겁게 느껴지는 버스차창 밖으로 내다본 지브롤터의 풍경은 조금은 특이했다.
바위로 뒤덮인 타리크산이 보였고 홍콩에서 보았던 빨간색이 칠해진 2층 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이곳이 영국령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스페인 땅이면서 통치권은 영국에 속해있는, 묘한 곳이 바로 이 지브롤터인 것이다.
때문에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가는 국경선을 넘어야 한다.
버스터미널에서 국경지대(?)까지는 5분(도보로)거리에 있다.
근처에 지브롤터공항이 있어 영국본토에서 날아온 비행기가 내리는 모습도 보였다.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을 넘는 국경은 그냥 버스 안에서 “여기서부터가 스페인”이라는 말 한마디로 됐으나, 지브롤터에서는 정식으로 여권을 제시하고 짐도 검색대를 통과하는 입국절차를 거쳐야 했다.
어쨌든 우리 일행은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 이곳 명물인 2층 버스를 타고 번화가인 메인 스트리트에 내려 상점가가 늘어서 있는 곳에서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세기의 결혼식을 올려(이곳의 성당에서) 유명해진 지브롤터는 스페인어로는 '히브랄타르'이며 그 뜻은 '자할타리크'라는 이슬람의 전사이름으로 아프리카를 건너온 그가 바위산에 성채를 쌓고 '타리크의 바위산'으로 부르면서 이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또 지브롤터해협의 아프리카 쪽 스페인령 군항 세우타 쪽에 있는 아초산은 일명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 불린다.
이는 그리스신화에서 헤라클레스가 아프리카대륙과 유럽대륙을 갈라놓았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타리크의 바위산이란 지명유래에서 보듯이 지브롤터는 711년 이후는 이슬람의 지배 아래에 있다가 14세기 이후 가톨릭교도가 승리하면서 1462년 카스티아왕국의 손으로 넘어갔다.
대서양과 지중해의 결절점에 놓여있는 지브롤터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상업과 해상의 패권을 노리는 유럽을 위시한 이슬람 국가의 쟁탈목표로 떠올랐다.
1607년부터 21년까지 네덜란드가 점령했고 그 후 1704년 영국이 합스부르크 가의 카를대공(大公) 지원을 명분으로 점령하면서 이곳에 있던 에스파냐사람들을 내쫓았다.
이에 따른 펠리페5세의 반격이 실패하면서 1713년 위트레이트조약으로 영국에 귀속된다.
지금 영국의 해군기지가 이곳에 있으며 영국인 총독과 의회가 이곳을 관리하고 있다.
▲ 지브롤터는 영국령으로 국경선을 넘어야 한다. 근처에 아랍인들이 세운 성채가 보인다. |
쇼핑에 취미가 없는 필자로서는 별 흥미가 없었지만 상점가를 이리저리 거닐면서 거리구경을 하다 일행들과 어느 카페에서 흑맥주를 조금 마셨다.
이곳 상점가의 거리는 차가 다니지 않아 사람들이 마음 놓고 쇼핑을 즐길 수 있게 해 놓았고 다리가 아프면 길거리 노천카페에 앉아 쉴 수 있도록 해놓았다.
필자는 스페인 여행에서 가장 부러운 광경중 하나가 바로 이 길거리 노천카페였다.
우리는 번화가 길거리에서 앉아 한가하게 얘기하며 쉴 수 있게 해놓은 곳이 별로 많지 않다.
따지고 보면 그래서 도보문화가 자꾸 퇴보하는 지도 모른다.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모로코까지 길거리카페는 어디고 널려 있었다.
문화의 차이인지 아니면 정책의 차이인지 아무튼 필자에게는 거리의 카페에서 즐겁게 대화하며 즐기는 이곳 사람들이 부럽게 느껴졌다.
유럽과 아프리카 양 대륙 사이에 놓여있는 지브롤터해협은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한다.
길이는 약 57㎞, 폭은 약 14㎞다.
이 지브롤터해협에 면한 스페인의 최남단 도시 타리파에서 모로코의 탕헤르까지는 불과 15㎞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시간상으로도 페리호로 1시간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유럽과 아프리카는 너무도 다른 세계였다.
우선 스페인의 타리파에서 모로코로 가는 여행객의 짐 검색은 그렇게 까다롭지가 않지만 반대로 오는 여행객의 입국절차는 무척이나 까다로워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린다.
그 이유는 모로코에서 스페인으로 들어가려는 불법입국자들을 가려내기 위해서다.
이들 불법입국자들은 정말 목숨을 건다고 하는데 페리호 엔진실에 숨었다가 열기로 숨지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한다.
또 배 밑창에 붙어 들어가기도 한다는데 필자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페리호내에서 유럽인들과 모로코인들의 사진을 대하는 태도부터 판이하게 달랐다.
유럽인들은 사진을 찍어도 자연스럽게 반응한다.
그러나 모로코인들은 사진찍히기를 아주 싫어해 페리호 직원들로부터 이들을 찍지 말라는 주의를 들어야 했다.
▲ 지브롤터 해협 건너편 모로코의 탕헤르 항구 입구 |
문득 1995년 킬리만자로 등반 때 마주쳤던 마사이족들이 생각났다.
그들도 사진찍기를 아주 싫어했으며 관광객들의 카메라를 부수는 일도 자주 발생했다고 한다. (물론 돈을 요구하며 촬영에 응하는 모습으로 진전되기도 했지만)
어떤 문화적 또는 종교적 관습으로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는 그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여행객의 예의라 생각했다.
유럽과 아프리카의 차이를 또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무엇보다 항구의 모습부터 다른 현실을 보아야 했다.
스페인 남부의 예술성이 곳곳에 배인 론다와 지브롤터는 그야말로 화려한 상점가와 주택가, 리조트가 즐비한 부자동네였다.
그러나 아프리카 대륙의 모로코 탕헤르항구는 그 분위기가 벌써 달랐다.
항구 건너편에 보이는 집들은 오래된 주택임이 선명하게 느껴졌고 거리는 우리의 60년대 풍경과 너무도 많이 닮아 있었다.
모로코에는 가난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스페인으로 가고자 하는 모로코인들의 로망은 마치 우리가 과거 미국상품을 부러워하며 미국을 선망했던 바로 그 미국병과 너무도 흡사했다.
문득 또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케냐의 나이로비를 찾았을 때 시내의 고층빌딩에서 본 유럽인들과 외각의 언덕에 빼곡히 들어차 있던 빈민가를 보면서 느꼈던 격차를. 유럽과 아프리카대륙을 그런 격차로밖에 보지 못했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아프리카는 그 어느 대륙도 흉내 낼 수 없는 광활하고 아름다운 대지위에 많은 부족들이 독특한 문화를 지닌 원시의 땅이다.
▲ 스페인에서 모로코로 가는 관문인 타리파 항구. 타리파와 모로코 탕헤르는 여러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
또 모로코에서 본 모스크사원은 종교적 장소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예술 건축미를 뽐내고 있었다.
유럽과 아프리카는 서로를 보완해가며 살아가야 할 그런 대륙이 돼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늘 전쟁의 대상이 돼 왔던 두 대륙을 이곳 지브롤터에서 보면서 필자는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무언가를 차지하려 싸우는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지중해는 말없이 짙푸른 색을 띤 채 흐르고 있었다.
글·사진=조성남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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