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복남 충남도여성정책개발원 연구위원 |
주민 전원이 참여할 수는 없지만 주민을 대표하는 위원들이 예산수립에 관여하게 되는 점에서 '참여민주주의' 활성화를 위한 제도다. 그렇지만 제도시행을 위한 세부사항을 민주적으로 협의하는 과정조차도 매우 어렵고, 실질적 참여의 실현은 더욱 쉽지 않아 보이는 과제이기도 하다.
새로운 제도 도입과 더불어 발생하는 어려움과 혼란은 충남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며 어렵게 '충청남도 도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안'이 최종 수정 의결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주민참여가 조례에서 보장되는 등 제도는 정비됐지만 재정위기와 낮아진 자치의식이 예산편성에 걸림돌이 되면서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 일본 교수가 한국에서는 제3섹터인 NPO·NGO 육성이 불충분하다고 언급했다는데, 지방자치시대 개막 이후 과연 얼마나 많은 국내 지자체들이 주민을 대등한 협력파트너, 대화상대로 생각하고, 역량 있는 참여주체로 육성해 왔을까 생각해 보면, 그러한 판단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주민참여예산제도의 도입 이전부터 이미 '지방자치', '주민자치', '거버넌스' 등 주민의 참여가 거론되어 왔다. 그렇지만 행정기관과 공공기관, NPO, 개인 등의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요구하는 자치실현의 목적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자치가 '민'보다는 '관'의 영역이었던 지역들 역시 여전히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민의 자치역량이 부족하다면 역량을 키워주는 것 역시 지방정부의 정책적 우선순위에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역량이란 것이 단기간에 걸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많은 지역에서는 아마도 제도가 정착되고 실질적으로 운영되기까지 상당한 시행착오과정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활성화된 주민참여담론 속에서 '외국인주민참여'의 당위성과 중요성은 지역에서 충분히 인식되고 있을까? 아직 대다수 외국인 및 귀화자, 그 가족에게는 매우 어렵게 여겨질 것으로 예상되는 지방정부 예산수립이 아닌 다른 부문, 가령 자신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외국인정책 혹은 다문화가족지원정책의 경우, 정책대상 당사자들의 정책참여는 어떨까?
현재 우리나라 외국인의 공공정책 참여는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다. 부산, 안산, 수원 등 일부 도시에서는 외국인대표자회의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권한과 예산이 없는 단순한 정책자문기구에 불과하다. 이는 관이 민인 외국인주민을 대등한 대화상태로 인정할 만큼 수용적이지 못한 점, 외국인주민의 역량부족 등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정부의 외국인정책의 방향성 역시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현재 외국인관련 정책은 대개 '다문화'정책이라 불리며, '문화'측면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이민자들의 시민권 구현을 위한 정치·사회적 의제들에 대한 논의가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결과적으로 이민자들의 역량강화와 참여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주민의 공공정책참여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약한 것은 외국인관련 조례 운영에서도 드러난다. 국내 대다수 지자체가 '외국인주민'관련 조례를 제정하였는데, 행정안전부의 '외국인주민지원표준조례안'에 입각하여 대체로 이주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있으나 실질적 역할은 불투명하다. 광주시 남구, 안산시, 목포시 등의 외국인주민의 인권증진을 강조한 몇몇 조례에서 관련 시책위원회 등의 당사자 비율을 3분의 1이상 등으로 명시하여 명목상 역할을 넘어 실질적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있을 뿐이다. 민간단체와의 협력이 명시된 지자체 조례 역시 경남, 제주 등 아직은 몇 개 되지 않는 실정이다.
외국인주민과의 거버넌스 및 정책참여 제도화의 현실은 현재 외국인이 비교적 다수 거주하는 국내 도시에서 조차 외국인 공동체 지원, 외국인대표자회의 등 거버너스구축이나 공동체육성에 대한 지원이 대체로 취약한 것에서도 투영되고 있다.
향후 외국인주민의 지역자치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역량강화와 더불어 적절한 수준의 대표성을 가지고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지자체의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요구된다. 한국인 원주민과 외국출신 이주민 모두의 참여가 없이는 민주적인 참여자치의 의미가 퇴색됨은 물론 지역화합과 상생발전 역시 불가능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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