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봉]노숙자(宿者:Home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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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봉]노숙자(宿者:Homeless)

[시사 에세이]유제봉 ㈜체리네트웍스 회장, 전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

  • 승인 2011-10-17 14:08
  • 신문게재 2011-10-18 20면
  • 유제봉 ㈜체리네트웍스 회장유제봉 ㈜체리네트웍스 회장
▲ 유제봉 ㈜체리네트웍스 회장, 전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
▲ 유제봉 ㈜체리네트웍스 회장, 전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
원도심의 명물 목척교를 중심으로 대전천이 잘 가꾸어져 있다. 특히 하상에 조성되어있는 산책로엔 아침, 저녁이면 조깅이나 걷기 운동을 하는 시민들로 북적인다. 그런데 운동을 하다보면 옥에 티처럼 보이는 것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유감스럽게도 다리 밑이나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노숙자들의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노숙자' 하면 우리의 귀에 익숙하긴 하나 왠지 모르게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불편스런 칭호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노숙자를 일러 거의가 오갈 데 없는 걸인으로 보는 것이 우리네 보편적인 시각일 것이다.

노숙자들의 형태를 보면, 거의가 나이 지긋한 계층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드물게는 여성 노숙인도 끼어있어서 이채롭다. 특히 놀란 것은 아직 미성년쯤으로 돼 보이는 남·여도 발견되고 있어서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나는 이럴 때면 '아직도 우리사회에 저런 노숙자가?'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그저 걱정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궁금증이 발동해 노숙자의 실체를 밝혀보고자 하는 야릇한 감정으로 이어져 남다른 관심을 갖게 해준다.

어느 날 아침이다. 조깅을 위해 대전천으로 향했다. 가을철에 들어선 대전천은 띄엄띄엄 피어난 코스모스 꽃과 갈대숲이 함께 어우러져 진한 가을 내음을 물씬 풍겨내고 있었다. 한참을 걷는 동안 예상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어느 노숙인이 시야에 잡힌다. 나는 곧바로 노숙인의 곁으로 용기를 내어 접근해 보았다. 그의 인격을 존중한 몸가짐으로다. 가까이 다가가 본 노숙자는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대화를 위해 인기척대신 헛기침을 해보았다. 단속 나온 사람으로 착각한 듯 곧바로 앉은 자세를 취한다. 두 사람은 외모로 보아 60대 전후쯤은 되어 보이는 친구사이인 듯싶었다. 나는 간단한 아침인사부터 나누고, 우선, 노숙자의 신세를 져야만 하는 이유부터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두 사람 중 한사람만 대화에 응한다. 그는 엉뚱하게도 “내가 돈이 없어서 여기서 잠자는 줄 아느냐? 나에겐 월세 이십여만 원(하루 7000원)짜리 하숙방이 있는데 너무나 적적하고 답답해서 그곳을 버리고 노숙을 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가 공기도 맑고 활동공간도 넓어서 얼마나 좋으냐? 거기에다 흐르는 자연의 물소리는 더욱 기막히다”며 대전천의 운치까지 더해준다. 의외의 답이었다.

'그래도 아무리 자기 숙소를 버리고 노숙인을 자처한 신세라?'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회통념상 노숙인 하면 바닥인생을 뜻한다. 아니 지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질타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는 입장은 아예 접어둔 심사인 듯싶다.

그럼 가족관계는? 그는 뜻밖에도 아들 하나 뿐이라고 한다. 아들은 4년제 대학에서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관련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해버린 채 말을 바꾸며 '자기는 비록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노가다?(근로자)라지만 자식이나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자기생활쯤은 충분히 꾸려 나갈 수 있다'고 자신감을 표한다. 그래서 다른 눈으로 자기를 보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한다.

'지금 여러분의 주변에 쓰레기들이 많이 어지럽혀져 있는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냥 놔두고 간다. 청소해주고 돈 받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만일 치울 것이 없다면 그들은 해고감이다.' 오로지 자기 합리주의식 답변이다. 얼마나 주변머리가 없으면 저런 곳에서 한뎃잠을 자야만 하는 신세일까? 라는 생각으로 그 답변이 지금 그의 위치에서 오히려 걸맞은 것일 거란 생각이 들어 스스로 위안을 삼고 말았다.

'곧 아침식사시간이다. 어떻게 해결하는가?' '식사?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다. 24시간 문이 열려있는 식당도 있다.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아침 요기나 하게 몇 푼 있으면 주고나 가시게…. ' 황급히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천원짜리 지폐 몇 장이 손에 잡힌다. 몽땅 털어서 내어주며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액수가 적어서 미안하다.' '아니다. 그쪽 마음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

이렇게 해서 노숙인과의 대화는 끝을 맺었다. 그와의 직접대화에서 얻은 결론은, 이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근로자라 한다면 어떤 동정이나 구걸을 기대하기보다는 자립의지를 일구어내 홈리스들이 하루속히 우리사회에서 가정을 꾸려 정겨운 이웃으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으로 세상의 구석진 곳에서 가족들을 외면한 채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가까운 이웃들이라도 나서서 조그마한 부분에서나마 노숙인들을 위한 이웃 사랑의 정신으로 배려차원에서 나눔의 정과 도움의 손길이 이루어 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부담스런 마음에서 감히 이글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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