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두헌 변호사 |
이러한 시효제도는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사실상의 상태를 유지·존중하기 위한 제도로 설명되고 있다. 이중 공소시효제도는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가벌성이 감소하고 증거가 멸실될 우려가 크며 국가의 태만으로 인한 책임을 범인에게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복합적 요소를 고려한 제도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 형사절차상 공소시효가 완성된 때에는 실체판단을 하지 않고 면소판결을 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이 공소시효제도가 영화 '도가니'에서 촉발된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사건으로 인해 회자되고 있다. 영화로 인해 재조명된 광주 인화학교 사건은 경찰이 재수사에 나서는 등 그 여파가 우리 사회를 흔들어놨고, 재수사 결과 당시 사건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교사들의 성추행사건도 드러났다고 한다. 그런데 관련법률상 공소시효 문제로 인해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 이에 여러 시민단체에서는 '조두순 사건' 이후 다시 한번 성폭력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하자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7일 발표한 정부의 장애인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대책에서는 이러한 공소시효 폐지문제는 일단 제외된 것으로 보도됐다.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0조에서는 공소시효에 관한 특례를 두고 있는바, 제1항은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범죄의 공소시효는 형사소송법 제252조 제1항에도 불구하고 해당 성폭력 범죄로 피해를 당한 미성년자가 성년에 달한 날부터 진행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2항은 동법 제2조 제3호 및 제4호의 죄와 제3조부터 제9조까지의 죄는 디엔에이(DNA)증거 등 그 죄를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인 증거가 있는 때에는 공소시효가 10년 연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현행법상 일부 범죄의 경우 공소시효연장에 관한 특례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 나아가 성폭력범죄의 경우 공소시효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해 신중론과 찬성론이 대립되고 있는 것 같다. 공소시효 폐지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견해는 현재 살인죄나 다른 강력범죄의 경우에도 공소시효가 유지되고 있으므로 성폭력범죄의 경우에 한하여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대책에서는 공소시효폐지논의가 빠진 것 같다. 그러나 성폭력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이를 밖에 알리기 어려운 특성이 있고 시간이 지날 경우 피해자가 더욱 위축돼 실질적인 보호가 어려우며, 장애인이나 미성년자의 경우 더더욱 가해사실을 알리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해야 할 측면이 크다. 따라서 현행법률을 즉시 개정해 성폭력 범죄의 경우 당장에 공소시효를 폐지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현행법률보다 공소시효연장의 범위를 더 확대하거나 고소기간의 제한을 없애는 등 여러 방법을 통해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더욱 중요한 점은 인화학교 사건에서 보듯이 어떻게 교육기관에서 오랜 기간 집단적으로 성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가다. 감독기관의 부실한 감독, 성폭력 범죄에 대한 그간의 관용적인 사회분위기 등이 이런 희대의 사건발생에 한몫을 하지 않았는지 고민해 봐야할 때다. 또 지금은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성폭력 범죄를 신고한 피해자가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입게 되는 또다른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결국 피해자, 특히 피해사실을 조리있게 표현할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이나 미성년자가 제대로 피해사실을 알릴 수 없게 만든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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