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훈 전 CBS상무,중문노인복지센터장 |
영화를 보기 전,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된 이야기를 놓고 뒷북치는데 동참하지 않겠다는 생각, 또 당시 사건을 다룬 법조계의 정의에 대한 믿음,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을 재구성한 작품이기에 영화적 허구가 가미되어 실제와 다를 수 있다는 생각 등을 전제하고 냉정하게 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그 냉정함이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많이 울었다. 장애아동에 대한 성폭행 문제도 큰 분노를 일으켰지만, 그보다 더 울분을 느끼게 한 것은 우리 사회 전체에 팽배한 유착과 비리가 나를 충격과 분노의 도가니에 빠지게 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을 보여준다.
인화학교에 신규 임용된 교사는 학교발전기금이란 명목으로 5000만 원을 요구 받는다. 경찰은 사학권력과 유착되어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법조계는 전관예우의 위력을 발휘하며 인간 말종들을 감싸주어 과연 법정이 정의를 지켜주는 곳인지 분노케 하고, 의사는 거짓 진단서를 발급하고, 거기에 교회까지 가담하여 분별력을 잃고 불의를 정의라고 주장하며 그들의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 2005년의 사건이지만 지금도 우리사회에 만연해있는 우리들의 현재 모습이다.
영화의 파급이 커지자 경찰이 뒤늦게 재수사에 나선다고 법석을 떨고, 정부는 '장애인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대책'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내놓고, 국회는 재발 방지를 위해 사회복지재단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하고, 광주시는 교육청 등 관계기관이 참석한 대책회의를 통해 인화학교를 운영하는 사회복지 법인 '우석'에 대한 법인허가를 취소하고 인화학원의 시설도 폐쇄하기로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뒤늦게 난리를 치고 있다.
원작자 공지영은 소설 도가니엔 실제 사건 실상을 절반도 못 담았고, 영화는 소설의 반도 전달 못 했다고 말한다. 일례로 영화에서 인권센터 간사로 활동한 인물은 실제로는 참교육학부모회 광주지부장이었던 윤 모씨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윤씨는 당시 광산구청 앞에서 무려 8개월이나 천막농성을 했으며, 그가 이끌었던 대책위는 2007년 4월2일부터 5월25일까지 광주시교육청 앞에서 인화학교 피해 학생들과 함께 천막수업으로 진실을 알리려고 했었고, 2008년 8월에는 청와대 앞에서까지 삭발시위를 벌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게 무관심했던 공직자들이 영화 한편에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인지 심히 의문스럽다. 워낙 여론이 들끓으니 어쩔 수없이 움직이다가 잠잠해지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와글와글 도가니로 끝나는 것이 아닌지도 염려스럽다.
관련법을 고치고 행위자인 사회복지법인의 설립을 취소한다 해도 잠시 울분을 달래주는 수준은 될지 모르나 총체적 부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건전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건전사회가 되려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각자 자기 분야에서 정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이성과 양심을 회복하고, 법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부도덕한 권력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고 심판하는 무서운 국민이 되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영화 '도가니'를 계기로 '나부터 변하자'는 다짐들이 확산되어 우리사회의 총체적 부실이 해소되고 진정한 공정사회가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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