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7시 유성구 구암동 (사)한국농아인협회 유성지부 한 켠에 마련된 사무실에서는 수화 회화법을 배우려는 7~8명의 수강생들로 자리가 모두 찼다. 수강생 유인숙(41)의 경우, 2년 전께 처음으로 청각장애인과 접하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의사소통이 되질 않아 답답한 마음에 수화를 배울 결심을 했다고 한다. 유씨는 “청각장애인이 알 수 없는 수화를 하고 있어 외국사람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많지 않은 만큼 수화를 통해 그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 '도가니', '글러브' 등 청각장애인에 대한 영화가 전국을 휩쓸며 청각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이들이 쓰는 언어, 수화를 배우려는 사람들도 부쩍 늘고 있다. 소리는 나지 않지만 손짓과 표정이 한데 섞인 수화는 일반인과 청각장애인간의 직접 소통수단이기 때문이다.
▲ 지난 10일 오후 7시 유성구 구암동 (사)한국농아인협회 유성지부에서 7~8명의 수강생들이 수화 수업을 받고 있다. |
다행히 사회와 분리된 청각장애인들의 현실은 영화 '도가니' 바람을 타고 일반 시민들에게도 전파돼 수화를 배우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전지역 5개 구별로 마련된 대전농아인협회에서는 현재 수화강좌를 열며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일주일 2회 3개월 정도가 기초 수화반으로 구성돼 청각장애인과의 대화를 꿈꾸는 시민들은 강의 내내 밝은 표정이다.
▲ 평상시 청각장애인과의 간단한 의사소통을 위해 알기 쉬운 수화를 청각장애인 임은경씨와 함께 배워보자. |
왼손바닥 아랫부분을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2회 정도 옆으로 문지르는 것은 '스마트폰'을 의미하며 힘이 세다는 표현은 '파이팅'을 외치듯 주먹을 쥔 오른팔을 앞으로 올리면 되는 식으로 쉬운 수화도 많다.
외국어를 배우듯이 기초 수화반 3개월 과정을 수료하게 되면 중학생 수준의 언어능력을 갖게 된다고 한다.
영화 '도가니'에서도 법정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해 수화통역사가 등장한 것처럼 생활 곳곳에서 수화통역사들의 활동도 활발하다.
지역에서 펼쳐지는 각종 행사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해 지자체나 기관에서 수화통역사들을 초청해 행사를 함께 진행하기도 한다.
지난주 계룡시에서 열린 군문화축제에서도 대전농아인협회 서구지부 통역사들이 참석해 청각장애인들의 귀 역할을 했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수화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지만 한편으론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냉소적인 시각이 나타나고 있다.
예전에도 청각장애인 영화가 상영관에 얼굴을 내밀어 수화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열기가 식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청각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조차도 수화를 몰라 자녀의 생각을 읽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복지시설에서도 제대로 된 수화를 구사하는 복지사가 없어 청각장애인들이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는 것 역시 그동안의 무관심을 반증한다.
인터넷쇼핑몰 사업을 하고 있는 청각장애인 임은경(30)씨는 “청각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보여주는 것은 좋지만 그동안의 차별된 인식이 남아있다”며 “수화를 배우면서 우리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차별하지 않도록 사회구성원들이 힘을 보태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지교하 대전농아인협회 회장은 “수화에 대한 이해가 없어 복지시설이나 일반학교에서 청각장애인은 고통을 겪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다”며 “수화를 배우게 되면 청각장애인들의 마음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이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경태 기자 biggerthan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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