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석]보이지 않는 것들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최용석]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언스 칼럼]최용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산팀 선임기술원

  • 승인 2011-10-10 14:16
  • 신문게재 2011-10-11 21면
  • 최용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산팀 선임기술원최용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산팀 선임기술원
▲ 최용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산팀 선임기술원
▲ 최용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산팀 선임기술원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는 미국의 우라늄 무기 개발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원자폭탄을 만들었고, 이를 일본에 투하하여 2차 세계 대전이 종식되었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사령관은 그로브스 장군이었다. 그로브스 장군은 맨해튼 프로젝트의 연구소장으로 오펜하이머를 임명한다.

원자폭탄 개발에는 많은 자원이 필요했다. 전쟁 중에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었으므로 군인이 필요했고, 그 시대의 핵심 기술 개발을 위해 많은 우수한 과학자들이 동원됐다. 우수한 과학자들을 이끄는 역할은 오펜하이머가 맡았다.

전쟁 중이었으므로 장군은 매우 다급했고,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마음에 혹시 적국이 원자폭탄을 먼저 개발할까봐 걱정도 컸다. 하지만 장군의 관점에서 봤을 때, 과학자들은 전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과학자들은 파티를 매우 자주 열었고, 심심하면 모여앉아 책상위에 다리를 올리고는 커피를 마시면서 큰 소리로 수다를 떨었다. 군인으로 인생을 살아온 장군에게 이것은 매우 참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바쁜 시간에 모여앉아 연구에 몰두하지 않고 있는 과학자들이 애국심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으며, 이 상태로는 적국의 원자폭탄 개발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장군은 과학자들이 올바른 길을 가게 하기로 결심하고, 과학자들을 모두 군인으로 만들고자 계획했다. 과학자들이 근무할 때 절도 있는 태도를 갖게 하고, 군복을 확실히 입혀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하려 한 것이다.

장군은 연구소장인 오펜하이머를 불러 자신의 계획을 말하고, 자신의 계획대로만 움직이면 원자폭탄 개발속도가 훨씬 빨라질 것이라는 확신에 오펜하이머의 동의를 구한다. 하지만 장군의 예상과는 달리 오펜하이머는 장군의 계획에 반대한다.

오펜하이머는 자유로운 연구환경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창의적인 결과물을 위해서는 그 계획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장군은 절도 있는 자세로 연구하는 것보다 자유롭게 떠들면서 연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오펜하이머의 생각을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코 이해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군은 전문가인 오펜하이머의 의견을 받아들여 결국에는 자신의 뜻을 굽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결과물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원자폭탄이 탄생했다.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연구환경. 장군에게는 이것이 보이지 않았지만, 오펜하이머에게는 보였다. 장군은 스스로 그것을 볼 수 없었지만, 오펜하이머가 보인다고 하는 것을 믿고 따랐다.

대한민국에는 섬유산업으로 1970년대 큰 성장을 이룬 도시가 있었다. 1990년대 들어 섬유산업이 한국에서는 사양산업이 되자 이 도시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다. 섬유산업과 연관이 큰 디자인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보고 디자인 도시로 도약을 선언한다. 장밋빛 청사진으로 계획한 미래상은 큰 성공을 거둘 것처럼 보였으나 이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이 있었다.

도시의 분위기가 상당히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어떤 아가씨가 배꼽티를 입고 거리에 나가면 길 가던 노인이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창조적인 디자인은 탄생할 수 없었고, 디자인 도시라는 목표 또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다루었던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는 사라졌다. 확실하게 결과물이 보이는 토목 관련 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데, 아직도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는 과거의 시각에 멈춰있다.

각 분야에는 그 분야에 맞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군대는 군대 나름의 지켜야 할 것이 있고, 그렇게 해야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토목에는 토목의 규칙이 있으며, 농업에는 농부의 성실함이 필수 요소다. 하물며 과학에도 과학자의 자유로운 연구 환경이 보장될 때에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연구성과가 만들어진다.

최근 자신의 분야에서 잘 해 봤기 때문에, 다른 분야도 잘 알고 있다는 주장이 넘치고 있다.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문가를 무시하고 일을 추진한다. 당대에는 마치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후 세대들은 그 일로 많은 고통을 당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중시할 때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일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