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용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산팀 선임기술원 |
원자폭탄 개발에는 많은 자원이 필요했다. 전쟁 중에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었으므로 군인이 필요했고, 그 시대의 핵심 기술 개발을 위해 많은 우수한 과학자들이 동원됐다. 우수한 과학자들을 이끄는 역할은 오펜하이머가 맡았다.
전쟁 중이었으므로 장군은 매우 다급했고,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마음에 혹시 적국이 원자폭탄을 먼저 개발할까봐 걱정도 컸다. 하지만 장군의 관점에서 봤을 때, 과학자들은 전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과학자들은 파티를 매우 자주 열었고, 심심하면 모여앉아 책상위에 다리를 올리고는 커피를 마시면서 큰 소리로 수다를 떨었다. 군인으로 인생을 살아온 장군에게 이것은 매우 참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바쁜 시간에 모여앉아 연구에 몰두하지 않고 있는 과학자들이 애국심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으며, 이 상태로는 적국의 원자폭탄 개발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장군은 과학자들이 올바른 길을 가게 하기로 결심하고, 과학자들을 모두 군인으로 만들고자 계획했다. 과학자들이 근무할 때 절도 있는 태도를 갖게 하고, 군복을 확실히 입혀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하려 한 것이다.
장군은 연구소장인 오펜하이머를 불러 자신의 계획을 말하고, 자신의 계획대로만 움직이면 원자폭탄 개발속도가 훨씬 빨라질 것이라는 확신에 오펜하이머의 동의를 구한다. 하지만 장군의 예상과는 달리 오펜하이머는 장군의 계획에 반대한다.
오펜하이머는 자유로운 연구환경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창의적인 결과물을 위해서는 그 계획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장군은 절도 있는 자세로 연구하는 것보다 자유롭게 떠들면서 연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오펜하이머의 생각을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코 이해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군은 전문가인 오펜하이머의 의견을 받아들여 결국에는 자신의 뜻을 굽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결과물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원자폭탄이 탄생했다.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연구환경. 장군에게는 이것이 보이지 않았지만, 오펜하이머에게는 보였다. 장군은 스스로 그것을 볼 수 없었지만, 오펜하이머가 보인다고 하는 것을 믿고 따랐다.
대한민국에는 섬유산업으로 1970년대 큰 성장을 이룬 도시가 있었다. 1990년대 들어 섬유산업이 한국에서는 사양산업이 되자 이 도시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다. 섬유산업과 연관이 큰 디자인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보고 디자인 도시로 도약을 선언한다. 장밋빛 청사진으로 계획한 미래상은 큰 성공을 거둘 것처럼 보였으나 이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이 있었다.
도시의 분위기가 상당히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어떤 아가씨가 배꼽티를 입고 거리에 나가면 길 가던 노인이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창조적인 디자인은 탄생할 수 없었고, 디자인 도시라는 목표 또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다루었던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는 사라졌다. 확실하게 결과물이 보이는 토목 관련 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데, 아직도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는 과거의 시각에 멈춰있다.
각 분야에는 그 분야에 맞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군대는 군대 나름의 지켜야 할 것이 있고, 그렇게 해야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토목에는 토목의 규칙이 있으며, 농업에는 농부의 성실함이 필수 요소다. 하물며 과학에도 과학자의 자유로운 연구 환경이 보장될 때에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연구성과가 만들어진다.
최근 자신의 분야에서 잘 해 봤기 때문에, 다른 분야도 잘 알고 있다는 주장이 넘치고 있다.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문가를 무시하고 일을 추진한다. 당대에는 마치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후 세대들은 그 일로 많은 고통을 당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중시할 때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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