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 600만명 시대를 연 프로야구. 그 뜨거운 야구 열기가 극장까지 이어질 것인가. 프로야구를 소재로 한 영화가 잇따라 스크린에 오른다. 어제 개봉한 '투혼'에 이어 12월엔 '퍼펙트게임'이 등판 대기 중이다.
'투혼'은 철부지 남편의 개과천선기다. 롯데 자이언츠의 윤도훈은 시속 160㎞를 넘나드는 강속구로 3년 연속 MVP를 차지한 괴물투수. 하지만 영화 속 그는 황금시절 과거를 되새김질하며 눈에 뵈는 것 없이 굴다가 추락을 거듭 중이다. 연일 스포츠지 1면을 장식하는 사고뭉치 남편을 둔 덕에 아내는 뒷수습의 달인의 돼간다.
타자를 향해 공을 던지는 빈볼 시비로 난투극을 벌이고 2군으로 밀려나고도 반성의 기미는 없다. 그런 와중에도 바람을 피워 집에서도 쫓겨난다. '나 부산 싸나이야'를 외치며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던 그도 아내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엔 정신이 바짝 든다. 이렇게 운을 뗀 영화는 도훈의 참회와 부활 과정, 가족 간의 사랑과 아픈 이별을 곁들이며, 코끝 찡한 감동과 눈물을 향해 정해진 수순을 밟아간다.
통속적이고 상투적인 줄거리지만 문제는 그걸 어떻게 그려내느냐다. 어떻게 표현해내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 달라진다. 김상진 감독이 매만진다면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 '귀신이 산다' 등으로 소동극 코미디의 달인으로 불리는 그가 웃음이 아닌 '눈물'에 방점을 찍는다?
물론 김상진표 영화에 특유의 웃음이 빠질 리 없다. 이번 웃음은 자잘하고 또 풍성하다. 집에 오면 “아는(얘는)?” “밥도(밥줘)” “자자”, 딱 세 마디만 한다는 부산 남자들의 무뚝뚝함과 지역 정서에서 빚어지는 웃음은 자칫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는 틈을 채운다. 그리고 영화의 비극을 더 진하게 전달하는 역할로 작용한다.
소재의 진정성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전개에 디테일한 상황과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의 반응, 코믹한 상황, 대사가 어우러져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젠틀한 이미지의 김주혁은 윤도훈 역을 맡아 투혼을 발휘한다. 지질하고 뻔뻔한 동시에 남자다우면서 로맨틱한 도훈은 그냥 부산 사람이 아닌 그의 내면에서 진짜 사나이로 살아난다. 미운 남편이지만 애정으로 그를 감싸는 아내 역의 김선아는 대신 기를 죽였다. 당당하고 코믹한 김선아가 익숙한 관객들에겐 조금은 낯선 모습이겠지만 평범함으로 튀는 김주혁을 감싼다.
하이라이트에서 펼쳐지는 롯데와 삼성의 경기는 야구팬들에겐 영화 이상의 감동과 재미를 줄 듯하다. 올 정규리그 우승팀을 맞췄다고 해서 화제가 된 장면이다.
안순택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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