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씨는 280여 개, 관향본(貫鄕本)은 800여 개, 파를 따지면 3400여 개에 달한다.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 족보의 90%를 대전에서 출판했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평가다. 회상사를 비롯해 농경출판사, 보전출판사, 활문사 등이 대전의 대표적 족보문집 전문출판사다.
이 가운데 회상사가 족보출판에서는 단연 으뜸이었는데 전국 족보의 70~80%가 여기서 발간되었다고 봐도 손색이 없다. 회상사(回想社)는 박홍구(88) 회장이 1954년 '옛 것을 회상해서 새것을 창조하라'는 이념으로 설립한 족보 전문제작출판사로 대전시 동구 정동 현재 자리에서만 57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대동보 500여 종, 파보 1500여 종, 가승보 900여 종 등 그동안 회상사에서 제작한 족보는 600만부가 넘는다. 소장하고 있는 계보학 자료만도 5만여 권이니 135개 성씨 족보 600여 종 1만3000여 권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중앙도서관 계보학 자료실보다 방대해 명실공히 한국 족보문화의 산실이다. 회상사를 빼고는 족보 메카 대전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성봉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은 “경주이씨 국당공파 파보를 시작으로 1974년 우리나라 첫 양장제본인 덕수 장씨 족보, 방대한 내용의 김해 김씨 삼현파 대동보(37권), 경주 이씨 대동보(34권) 등 회상사에서 발간된 족보는 보학연구의 중요한 자료”라며 “대전에 뿌리공원과 족보박물관이 들어설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회상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회상사는 자체 글자체를 개발해 박 회장의 호인 춘전(春田)에서 딴 '춘전체'란 이름으로 1996년 특허등록을 했으며 사옥 내에 '회상문보원(回想文譜院)'이란 국내 최초의 족보도서관을 만들기도 했다.
▲ 회상문보원에 진열된 족보들. |
연로한 박 회장을 대신해 현재는 박병호 전 동구청장이 사장을 맡고 있는데 박 사장은 “족보가 없는 집은 거의 없기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도 자신의 가문 족보를 제작할 당시 회상사를 많이 찾았다”면서 “윤보선 박정희 전 대통령 뿐만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도 당선 직전인 1996년 회상사를 방문했었다”고 회고했다. 박 사장은 또 “지금은 인터넷 등 디지털 기기 발달로 직접 회상사에 찾아와 교정작업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2000년대 이전만해도 갓 쓰고 도포 입은 노인들이 1주일 이상 회상사에 묵으면서 교정을 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외지에서 와 족보 교정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여관과 식당이 아직도 회상사 건물 내에 남아 있어 당시 모습을 실감케 한다.
그러나 인쇄산업의 위축은 물론 디지털과 전자족보 발간으로 족보 출판이 현격히 줄어 회상사의 명성도 전만 못한 게 사실이다. 특히 57년간 회상사에서 출판하고 수집한 족보 5만여 점을 자체 도서관에만 보관하고 있어 족보박물관과 뿌리공원과의 연계가 아쉽다는 지적이다.
▲ 납활자를 이용해 족보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
이에 대해 한국족보박물관 심민호 학예연구사는 “회상사를 비롯한 족보전문출판사들이 대전을 족보 중심도시로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한 건 사실이지만 박물관과 상업시설인 출판사가 한 공간에 들어가기에는 풀어야할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 1950년대 전국에서 족보교정을 위해 대전을 찾은 사람들. |
글=임연희·동영상=금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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