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상영 미술학 박사·평론가 |
이 작품은 인간의 흔적에 관한 주제였으며, 시간성과 장소성에 따른 선택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여기에는 인간의 조형적 형상이 없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인간을 말하면 인간이 잘 안 보이는 부분도 있겠지만 저의 관심은 인간이었습니다. 이곳은 목원대로 올라가는 목동 골목길에서 6·25 사변 때에 판자촌이라는 한 오래된 골목의 언저리였죠. 어떻게 보면 원초적, 원시적 삶이 녹아져 있는 흙길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죠.”
즉 사람의 흔적이 농후하게 흩어져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고대 로마가 지금의 로마 밑에 퇴적해 있는 것처럼 인간의 때가 몇 층의 흔적으로 녹아 있음을 발견하려는 지적 호기심이었다.
강정헌은 작품에서 구획하고 있는 선들을 보며, “나는 금산군 남이면 상리 활골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살면서 한국이라는 것을 조망하고 더러는 길에 떨어진 옷핀이나 사람의 흔적을 느끼기도 하고 더 깊이 있는 사람의 흔적인 일면들을 보게 되었죠”라며 덧붙인다.
▲ 대전 78세대 1회 전시에 출품한 강정헌의 실제 전시 작품. |
작업 과정을 보면 천에다가 본드를 칠하고 땅에 뒤집은 후 땅에 있는 물체들을 천에 붙여 못으로 천 네 곳을 찔러 흰 실로 연결하였다.
본드 칠한 천에는 인공적인 숟가락, 젓가락, 쭈쭈바 봉지, 종이, 작은 돌멩이, 모래, 흙 같은 것들이 달라붙었다.
1회전 당시 대전 78세대 전시장에는 현장에서 작업했던 사진 6컷을 찍어 붙여놓고, 현장에서 채취한 물체들을 크기별, 대상별로 분류해서 바닥과 벽에 늘어놓고 붙였다.
어찌 보면 이건용의 '장소의 논리, 1975'를 연상케 하는 부분도 있다.
왜냐하면 당시 이건용이 자신의 로지컬-이벤트를 펼칠 때의 모습과 프로세스 사진을 전시장에 배치하던 작품 경향에 대전 78세대 멤버들이 몰입되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방법론이나 전개의 과정은 비슷했으나 철학이나 표현 내용은 다르게 시각화되곤 했는데, 시기적으로 강정헌은 평면적인 작품(구상적 유화 작품) 제작과 탈평면화를 동시에 지향하는 동시적 성향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 보여진다.
강정헌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실 보다 극사실적이고 보다 리얼한 걸 사고하면서 붓 끝으로 그려내는 사실주의적 방법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죠. 어찌 보면 사람을 속이는 것일 수도 있고, 진정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새롭게 인식시켜 보여줄 수 있는 게 뭐냐! 그런 것이 행위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 이런 작품 성향을 몇 차례 더 했죠. 방법을 상당히 많이 바꿔가면서요. 그러니까 대전 78세대 전시에서도 보여줬고, 더러는 공주에서 했던'금강현대미술제' 등 그때그때 행위로 보여줬던 부분도 있지만 남아있는 자료는 거의 없습니다.”
조상영 미술학 박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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