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을 둘러보면서 느낀 소감을 한두 마디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지만 우선 대단한 종교국가라는 점과 문화예술이 살아 숨 쉬는 나라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유럽을 대표하는 가톨릭국가가 스페인이므로 여기에 긴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문화국가 역시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시리즈 전편을 통해 언급했음을 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스페인이 지니고 있는 다민족, 다종교적 문명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같은 문화국가적 토대는 어쩌면 스페인이 지닌 자연환경이 크게 작용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말라가 리조트지역의 주택가. 흰 외벽과 자연미가 느껴지는 지붕, 그리고 녹색의 정원이 아름다운 색감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여행기간 내내 강한 햇빛이 대지에 내리꽂았고 스페인의 도시를 여행하는 차창 밖으로 메세타라 불리는 평평한 고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또 지중해는 너무도 짙푸른 바다를 이루고 있었으며 평원에는 올리브 나무와 해바라기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개양귀비도 지천에 깔려있었다.
실제로 영화 '해바라기'의 촬영지가 스페인의 어느 고원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너무도 아름답고 밀과 올리브라는 먹을거리가 풍부한 스페인은 유대인과 아프리카·중동의 이슬람민족에게 낙원으로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상념에 젖어보았다.
이 같은 자연 속에 자연스럽게 문화와 예술이 자리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 스페인여행중 접했던 도시들은 뛰어난 건축과 예술품뿐만 아니라 이들 스페인사람들의 생활 속에 문화예술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령 세비야에서 묵었던 다음날 아침 일찍 호텔 주위를 산책했는데 조금은 여유가 있어 보이는 계층이 사는 주택가였다.
그런데 이 주택가의 창문과 정원 그리고 길섶 옆의 고물상 비슷한 곳에 놓여 있는 물건들에서 예술적 분위기가 느껴졌다.
비단 주택가 뿐만이 아니다.
길거리에서도 이런 느낌은 도처에서 느낄 수 있었다.
스페인의 도시 거리에서 필자가 발견한, 우리와 다른 풍경은 서점이 손쉽게 눈에 뛴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서점이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중소서점이 다 문을 닫은 데다 시내 대형서점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비교적 서점이 곳곳에 있었는데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1인당 도서관 면적은 물론 장서 수에서 스페인이 1위라고 했다.
▲ 과거와 현재의 문화가 공존하는 스페인은 도시 자체가 눈요깃감이다. 세비야의 대성당 근처에 관광객을 기다리는 마차와 말들의 모습. |
이 같은 숫자는 금융위기 속에서도 4%밖에 줄지 않았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듣고서 비로소 스페인의 문화적 체취의 비밀을 알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은 책을 가까이 하기 때문에 문화적 저력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이 점이 스페인을 문화국가로 만들었지 않았나 추측해 보았다.
스페인에는 몇백년된 대학들이 많다.
대학도시도 여러 곳이라고 한다.
오래된 대학이 있고 또 도서관이 그곳에 있어 자연스럽게 책을 대하게 될 것이다.
비단 대학생만이 아니다.
일반인들도 책을 통해 문화적 감수성을 키워 나간다고 생각하니 여간 부럽지 않았다.
우리는 서점도 줄어들고 학생들도 참고서 위주의 공부가 대부분이어서 폭넓은 독서와는 거리가 먼 현실이 아닌가.
▲ 바르셀로나 시가지 모습. 스쿠터와 자전거, 자동차의 주차구역이 나뉘어져 있어 시민들의 이용이 편리하다. |
문명과 문명의 토대를 이루는 지식은 결국 도서관과 책에서 나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스페인의 생활문화를 얘기하면서 축제를 빼놓을 수 없다.
2월 스페인 전역에서 벌어지는 카니발을 비롯해 일년 내내 축제가 스페인 곳곳에서 벌어진다.
대부분의 축제가 가톨릭과의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축제는 자연발생적인 경우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우리네처럼 관주도의 축제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7월 초순에 열리는 팜플로나의 소몰이축제는 엽총자살로 유명한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 등장해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세계각지에서 이 축제를 보기 위해 관광객이 몰려드는데 팜플로나 사람들은 이 축제에 모든 정열을 쏟는다고 하니 축제다운 축제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필자는 말라가에서 축제까지는 아니고 동네잔치 비슷한 민속한마당을 볼 기회를 가졌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남미 여러 나라사람들이 자기 나라 민속품을 전시하는 한편 민속의상과 민속춤을 자랑하는 그런 한마당이었다.
스페인사람은 물론 관광객과 남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어울려 얘기하고 즐기는 모습에서 스페인의 혼합문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스페인의 생활문화를 논하는데 스페인의 관광산업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프랑코 치하인 1960년대부터 스페인은 관광산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늘날 세계적인 관광대국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프랑코 정권의 공로라 할 수 있다.
스페인의 관광산업이 진흥되면서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되었고 스페인의 국력도 높아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국 어디를 다녀도 볼 것이 풍부한 나라가 스페인이다.
유적이 잘 보존돼 있고 어디를 가도 문화 예술적 향취가 그치지 않고 있다.
▲ 투우를 알리는 거리의 포스터(동물을 학대한다는 이유로 스페인에서도 투우경기를 보기가 쉽지 않다). |
스페인은 세계5대 장수국가에 속한다.
햇빛과 먹을거리가 풍부해서 그런지 모른다.
스페인은 또 미용 산업이 발달된 국가다.
올리브를 활용한 화장품을 비롯한 코스메틱 산업이 발달해 세계적인 스타나 부호 등이 스페인을 찾는다고 한다.
스페인의 생활문화로 요리를 빼놓을 수 없다.
유럽에서 음식 맛이 없는 나라로 영국이 꼽히고 있고, 풍부한 요리로 식도락가들이 많이 찾는 나라가 스페인이다.
'오믈렛', '까스테라', '뎀프라'처럼 우리가 많이 듣던 요리이름이 실은 스페인 사람들의 이름을 딴 음식이라고 가이드가 들려주었다.
이런 장점들이 상호 결합돼 세계에서 살기 좋은 10대 도시에 마드리드가 속한다.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수도이면서 문화와 예술의 도시라는 면에서도 손색이 없었다.
스페인의 이 같은 모습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한편으로 부러움을, 또 한편으로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우리도 5000년의 유구한 역사와 한글을 비롯한 팔만대장경 등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생활문화가 세계에 내 놓을 만큼 자랑스럽지는 못하다.
스페인처럼 문화와 예술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려면 그만큼 국민들의 문화수준이 높아져야 할 것이다.
아직은 그런 단계가 아니지만, 조금 더 세월이 가면 우리도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하는 상념에 젖어보았다.
글·사진=조성남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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