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트다운'은 '칸의 여왕' 전도연과 연기파 배우 정재영의 만남으로 일찌감치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명불허전. 두 배우의 연기는 빛을 발한다. 정재영은 웃음기를 싹 뺀 우직한 연기로, 전도연은 화려한 팜므파탈로 변신해 극과 극의 앙상블을 그려낸다.
오프닝은 정재영의 몫. 태건호는 어떤 빚도 다 받아내고야 마는 채권추심원이다. 그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건호는 아내는 떠났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죽었다. 죽기만을 바랄 것 같은 그가 살려고 발버둥친다. 아들의 장기를 기증받은 사람들을 찾아가 이식을 부탁하려 한다. 왜일까. 이 의문스런 변화를 정재영은 에너지 내뿜는 연기로 들려준다. 죽는 게 억울하니까.
그를 구할 유일한 인물이 하필 차하연이다. 전도연이 연기하는 차하연은 달변과 미모로 170억원쯤 해먹는 건 식은 죽 먹기인 사기꾼이다. 이미 연변의 흑사파에게 쫓기는 몸인 그녀는 건호를 이용해 또 사기를 치고는 건호를 버리고 달아난다. 죽이고 싶도록 미워도 어쩔 것인가. 그녀가 살아야 그도 살기에 건호는 위험에 처하는 하연을 번번이 구해준다. 악연으로 묶인 두 사람의 기막힌 동행이 영화의 묘미이고, 흑사파와 하연을 배신한 원조 사기꾼이 가세하면서 영화는 더 재밌어진다. 악당들의 추격은 거친 액션을 동반하며 볼거리를 풍성하게 만든다.
액션으로 치닫던 영화는 후반 들어 드라마로 궤도를 바꾼다. 건호는 아들이 죽던 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심인성 기억상실증이다. 곧 죽을 지도 모를 상황에 처하면서 그는 아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려 애쓴다.
하연은 열일곱에 딸을 낳고 버렸다. 하지만 딸이 납치되자 딸을 구해내고 엄마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 눈물 빼는 두 사람의 신파가 교차하면서 영화는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공기가 완전히 다르지만 연결은 매끄럽다. 액션 장면에서 건호와 하연의 사연을 조금씩 흘리면서 드라마를 구축해가는 연출 솜씨가 돋보인다. 빠르고 군더더기 없는 전개, 적절히 분배된 액션과 드라마가 빚어내는 재미가 상당하다.
2001년 단편영화 '뉴스데스크'와 '승부'로 이름을 알렸던 허종호 감독의 데뷔작. 실력파 신인의 등장이다.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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