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락 방북' 특종 메가톤급 파장

'이후락 방북' 특종 메가톤급 파장

권력구조따라 출입처 교체 당연시 군사정권시절 필화사건으로 '곤욕'

  • 승인 2011-09-26 15:40
  • 신문게재 2011-09-27 10면
  • 안영진 중도일보 前 주필안영진 중도일보 前 주필
[안영진 전 주필의 중도일보 60년 그때 그 현장]

중도일보가 전시속보판에서 일약 4페이지 신문으로 변신한 것은 1956년의 일이었다. 그것은 새 지평을 여는 날갯짓이며 새 지평을 여는 우렁찬 신호이기도 했다. 편집국장에는 소설가 추식을, 주필은 중앙지 정치부장 출신 이한용을 기용했다. 부사장은 송영헌(내과원장), 희곡작가 임희재도 이때 동참을 한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의원.<사진=중도일보 DB> 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의원.<사진=중도일보 DB> 
지방지 치고는 보기 드문 호화멤버로 사옥은 공평사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대한교육보험빌딩이 들어서 있다. 그것은 훗날 대전 제일의 12층 경암빌딩시대를 여는 전주곡이었다. 이에 용기백배 기자들은 진실보도를 외치며 날을 세운다.

하지만 편집국장 추식과 이웅렬 사장 사이에 자주 이견을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이와 같은 예는 타사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었다. 추식은 이때 녹슨 태양이라는 소설을 연재한 일이 있는데 그 주인공은 사장이었다. 이렇게 사장을 견제하려다 뜻을 접고 서울 나날이 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임희재와 부사장도 이때 떠났다. 후임국장에는 조선일보(조사부장) 출신 이일찬이 맡아오다 62년 염득균, 김정욱 등을 이끌고 대전일보로 건너간다. 지방지에서 중앙지로, 타 지방사 또는 방송국으로 이동이 가능했던 시대의 이야기다.

하지만 4페이지 지면시대인데도 중도, 대전 두 신문은 양극(兩極) 아닌 양축(兩軸)을 이루며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두 신문이 연재물을 갖고 첫 대결을 벌일 때의 일이다. 대전일보에선 금강천리를 들고 나왔고 중도일보는 백제7백년으로 맞선 일이 있었다.

대전에선 염득균, 정의화, 조철식 등 부장급과 민완기자가 동원되었고 중도일보는 필자가 나섰다. 그때 필자는 부여, 공주에 묵으며 홍사준 부여박물관장을 찾아가는 등 고군분투(?)한 셈이다. 그때 일이 필름처럼 뇌리를 스쳐간다.

한글전용과 한문 망국론=군사정권이 5개년 경제계획, 새마을사업, 국민의식개혁, 부조리척결, 경부고속도로건설을 밀어붙이자 구 정객들은 그 플랜은 군부 것이 아니라 장면내각 것을 도용한다고 폄하하고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박 정권의 치적이라는 걸 역사는 증언한다.

그래서 구 정치인을 향해 패자의 모놀로그(독백)라 매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군사정권에선 국민의 기본권을 유보하면서까지 건설과 소득증대에 매달렸다. 또 그들은 5·16을 조국근대화의 신앙이라며 국가지상(國家至上), 민족지상(民族至上)을 끊임없이 외쳐댔다.

60년대 초의 일이다. 색안경을 낀 어느 최고위원(중령)에게 사회분위기가 너무 딱딱하다고 하자 튕겨 나오듯 “잘 살기 위해 독재 좀 하면 어떤가?”라며 화를 냈다. 그 바람에 머쓱해진 적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정치의 속성이라 할 언어의 기교에도 익숙해져갔다.

구 정객이나 지식인을 잡아 가둬놓고 명분을 질서 속에 보호 중이라는 식으로 나왔다. 언론계에도 변화는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그리고 행정관서의 공문서부터가 달라졌다.

이전의 공문서는 물품구입을 할 때 '物品購入上申件'이라 써놓고 '首題之件에 關하여 左記와 如히 事務用品을 구입코자 하오니 決載 仰望耳', 하는 식이었다. 난해한 한자로 중언부언(요설체) 동원해야 잘 된 기안(起案)이라던 시대였다.

초심자는 그 바람에 기안요령부터 익혀야했다. 그때 순 한글식 공문과 횡문(橫文=가로쓰기)및 텔레타이프가 등장한다. 신문도 그러했다. 종서(세로쓰기)에 한자혼용을 해오다 의외의 폭풍을 만난 꼴이었다. 이때 한글학자들은 한자망국론(漢字亡國論)까지 들고 나왔다.

한문은 뜻글이요, 한글은 말글임에 틀림이 없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신문사로서도 실행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져들었다. 한글전용 주장파에선 한글은 배우기 쉽고 텔레타이프를 당장 사용할 수 있지만 한문타자기 개발은 요원하다고 외쳐댔다. (오늘에 와선 한자입력에 불편이 없지만)

한자의 종주국 중국을 보라는 것이다. 한자에 매달리다 후진국으로 전락했다며 인간의 눈 자체가 옆으로 째져 있어 횡서구조라며 한자망국론까지 외쳐댄다. 이때 어느 시인은 '아! 상형문자(象形文字)의 슬픈 운명이여!'라고 영탄하는 걸 지켜본 일이 있다.

회사에선 문화부가 방향설정을 하는 게 좋겠다는 분위기였다. 이에 필자는 주역대가라는 충남대 이정호 총장을 찾아가니 한마디로 한글전용은 시기상조라고 잘랐다. 서예가 정향(靜香)은 “쌍것들이 하는 짓”이라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 때 옥고를 치른 충남대 김모 교수도 “당장 한글전용은 무리”라고 했다. 이에 중도일보는 방침을 세웠다. 한글과 한자를 잠정 혼용하되 한자수를 1000자 정도로 제한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그 까닭은 ① 한문은 뜻글로 수천 년을 써온 탓에 겨레의 의식 속에 배어 있는 문자이고 ② 그래서 한문은 남의 것이 아니라 민족의 숨결 그 자체이며 사서(史書)와 성씨(이름), 지명 모두가 한문표기로 되어 있어 혼란이 우려되고 ③ 한문 종주국 중국이 한문으로 인해 얻은 것은 빈곤뿐이라지만 영어를 쓰는 필리핀과 인도의 현실은 어떠한가.

또 불어를 써온 월남은 그 모양 그 꼴이고 ④ 일본에선 소설내용까지 한문 벽자를 쓰고 그 옆에 가나로 토를 달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이 후진국인가. 그러니 잠정혼용을 하는 게 현명하다고 정리를 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많은 것을 배웠다.

군사정권시절 기자들은 긴장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권력구조 개편이 있을 때마다 출입처가 바뀌기 때문에 그러했다. 당시 JP는 떠오르는 태양이며 기린아로 훗날엔 킹메이커, 영원한 2인자, 정계의 도박사, 낭만의 혁명가, 심지어 모사꾼 소리까지 들어온 인물이다.

지모는 일품인데 카리스마에 문제가 있다고도 했다. 초기엔 김용태, 양순직, 김달수 등과 세를 이뤄오다 3선 개헌을 고비로 무너진 세력이었다. JP가 부상하거나 자의반 타의반하며 외유를 하게 되면 예외 없이 출입기자를 교체했다.

정당에선 출입기자 교체를 자주 요청해왔다. (비위에 안 맞는다고) 그 바람에 어느 기자는 누구라인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JP라인하면 이지풍, 안영진, 황선재, 성기훈, 서정의, 윤성환, 김병한, 반 JP계로는 김종선, 박상기, 김춘길, 성원길로 비쳤던 모양이다. 본인의 성향과 상관없이 그렇게 바라보는 분위기였다.

▲ 2009년 11월 1일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분향소 모습.[사진제공=뉴시스]
▲ 2009년 11월 1일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분향소 모습.[사진제공=뉴시스]
그 무렵 중도일보는 특종기사로 해서 곤욕을 치른 일이 있다. 이후락이 박대통령 밀사로 방북, 김일성을 만나고 온 직후 이 엄청난 기밀을 터뜨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방지로선 크나큰 모험이었다. 당국의 공식발표가 없는 상황에서 대서특필했으니 그것은 화약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행위였다.

기사화 여부를 놓고 장시간 논의 끝에 기사화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김춘길(정치부)이 기사를 쓰고 부국장인 필자가 문맥을 손질했다. 편집국장은 그날 재빨리 출장을 달고 밖으로 나갔다. 이때 누군가가 뱉듯이 말했다. 국장님은 하필 이때 출장이냐고….

표제는 '이후락 정보부장 김일성을 만나다'가 아니라 간접묘사 형식을 취했다.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본 것이다. 내용에선 '남북 간에 해빙이 온다. 그래서 여관이나 전봇대에 나붙은 북진통일, 간첩을 색출하자, 수상한 자 다시 보자 등의 유인물은 철거된다'는 요지였다.

그것을 정치면 머리에 올렸다. 원고를 공장에 넘기고 나서 점심을 때운 뒤 회사 정문에 이르자 검은 지프차 옆에 서성대던 두 남자가 “국장 갑시다”하더니 거칠게 검은 차에 쳐 넣는 게 아닌가. 그 기사 때문이로구나! 직감하는 순간이었다.

얼마 후 짐짝 다루듯 차에서 내려놓는데 안에서 네네! 지금 안 국장을 연행했습니다. 네네!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저녁식사도 거른 채 밤새 취조를 받아야 했다. 수사관은 뉴스원(제보자)을 대라고 종주먹을 댄다. 담배 한 대 피우자는 말에 아직 정신 못 차렸군! 하고 눈을 부라린다.

“이거 당신 필적이지.” 내미는 걸 보니 기자가 쓴 글에 화살표를 하고 내가 가필한 그 원고가 벌써 그들 손에 들어와 있는데 놀랐다. “동아, 조선도 숨죽이는 판에 중도일보가 주제넘게”라는 모욕적인 언사까지 튀어나온다. 하지만 피의자 신분이니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

'취재원 보호는 기자의 생명'이라며 나는 함구를 했다. 내 지시 하에 기자는 썼고 문맥도 내가 고친 것이니 기자에겐 책임이 없다고 항변해보았으나 통하지 않는다. 밤새 시달림을 받고 나서 다음날 해질 무렵 필자는 그곳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중앙지가 일제히 터뜨렸기 때문이다. 시일을 끌었다면 크게 화를 당할 뻔 했던 일대사건이었다. 그때 심정은 이러했다. 사기나 공갈, 파렴치가 아닌 필화사건이라면 얼굴 못 들 일은 아니라며 마음을 달랬다. 60년대 지식인들의 동향은 어떠했는가.

그 당시는 참여와 반대, 방관, 은둔이라는 네 갈래로 갈라지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많은 지성들이 서울행 특급에 몸을 실어 이젠 설 자리가 없다던 시절…. 반면 내 고향은 급행열차가 서지 않는 곳이라며 투덜대는 경우도 있었다.

어떻든 참여파와 극력반대파, 방관파와 은둔파 등 네 갈래였다. 그 시절엔 5계절이니 25시, 8요일, 창백한 지성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는 질서와 상식의 궤(軌)를 벗어난 계절. 그래서 구제 받기 어려운 시대라는 뜻이다. 군사정권을 겨냥한 은어였다.

카리스마와 사디즘(Sadism)은 연결고리라며 매조키즘(Masochism)을 들먹이기도 했다. 이는 정치용어가 아니다. 에로세계에서 즐겨 쓰는 용어지만 이를 정치에 대입시키는 경우다.

사디즘은 상대(여자)를 마구 학대하는 행위, 거기서 쾌감을 느끼는 변태성을, 매조키즘은 학대를 받으면서도 열광하는 상황을 말한다. 일부 지성들은 세상을 그렇게 풍자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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