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광전 대표<사진 왼쪽>와 한미타올(주) 설립 당시부터 직원으로 근무했던 심문길 부사장이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백광전 대표=1945년 평안남도 출신으로 6ㆍ25 전쟁 때 대전으로 내려오게 됐고, 이후 대전고(43회)와 충남대 농대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학교 졸업 후 대전중앙신협 이사장과 대사동 방위협의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1993년 8월 한미타올(주)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백 대표는 3대째 타올산업을 이어가고 있는 경영자다. 할아버지는 고향인 평안남도에서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았고, 백 대표의 아버지는 한미타올 설립 당시 임원으로 근무했다. 백 대표가 한미타올을 경영하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1997년 IMF 당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당시 매출은 절반 수준에 불과했지만 비용 절감과 급여를 줄이는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국내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한미타올은 제2의 위기를 맞았다. 내수경기 부진과 함께 세계경제 침체로 인해 수출도 줄어 매출액이 감소했지만, 백 대표는 IMF를 이겨낸 노하우를 바탕으로 구조조정 없이 경영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했다.
백광전 대표는 “회사가 어려운 시절 경쟁사에서 직원들에게 스카우트 제의도 많았지만, (회사를) 떠나지 않고 지켜준 직원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타올 생산이라는 한길만을 걸어오며 제품 하나하나에 모든 임직원들의 정성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 백광전 대표<사진 왼쪽>와 한미타올(주) 설립 당시부터 직원으로 근무했던 심문길 부사장이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한미타올은 1971년 대덕구 읍내동 대전산업단지 내에 입주해 국내 타올업계의 선두주자 역할을 하며, 품질 좋은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1970년대 초반 회사 설립 당시 내수경기가 좋지 않아 국내시판에 어려움을 겪었던 한미타올은 결국 저렴한 가격으로 일본 등 해외시장을 공략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이후 1980년대에는 올림픽 등 국제행사와 인연을 맺으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비롯해 1988년 서울올림픽, 1993년 대전엑스포에 이어, 2002년 한일월드컵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열린 국제적인 행사에 독점판매권을 획득, 한미타올 브랜드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됐다. 한미타올은 국내 최초로 KS표시품 생산지정업체 선정과 함께 ISO 9001 인증에 이어 GQ(우수제품)마크, SF마크를 획득(항균 방취 위생가공업체 지정)하며,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한미타올은 국내 100여 개의 대리점을 통해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한편 한미타올은 2012 여수세계박람회 행사에 제품을 공급하게 됐다.
박전규 기자 j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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