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인술 대전연정국악문화회관장 |
그리고 30년이 지난 2011년 7월 1일부로 대전연정국악문화회관의 관장으로 부임하였다. 그러기에 더욱더 감회가 새롭다. 지난 7월 14일 기부문화의 꽃을 피워낸 개원 30주년은 나에겐 특별한 감동과 나라음악에 대한 자부심을 더욱더 느끼면서 이 시대의 진정한 기부문화가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고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되는지를 알 수 있게 하였다.
연정 선생의 쩌렁쩌렁한 꾸짖음의 말씀이 아직도 들리는 듯한데, 연정 선생이 영면에 드신 지 벌써 7년이 되었다. 연정 선생은 범람하는 서양문화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우리음악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일생 동안 사라져 가는 소중한 자료를 찾아 전국을 누비며 수집한 국악기 및 국악 관련자료 2만여 점을 대전시에 기증해 1981년 지방정부로는 최초로 대전시립연정국악연구원의 문을 열게 하였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국악 발전에 초석을 다졌으며, 평생을 전통음악의 바른 계승을 통해 민족혼을 일깨워 내겠다는 국악 계몽운동에 헌신하신 연정 선생의 큰 뜻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게 된다.
요즈음에는 유네스코나 종교단체 그리고 사회복지시설 등에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많은 분들이 경제적, 정신적, 물질적 기부를 하고 있다. 우리고장 대전에는 연정선생 외에 평송 이남용 선생에 의해 세워진 '평송청소년문화센터'와 평생 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한 정심화 할머니에 의해 세워진 충남대학교 '정심화국제문화회관' 그리고 계룡건설 이인구 회장이 기부한 '유림공원'등이 있다. 이렇듯 한 사람의 기부가 그 지역 또는 국가발전에 크나큰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기부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위대하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다. 문화가 곧 그 나라의 국가경쟁력을 가늠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역사성만큼 깊은 예술적, 문화적 가치가 높은 전통예술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런 소중한 자산을 통해 세계 문화의 중심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1980년대 국악의 불모지 대전을 중심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무대에 우리 전통음악을 당당히 소개함으로써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유감없이 보여 주신 분이 바로 연정선생이다.
국악운동가 연정선생은 생전에 단순히 국악을 아끼고 좋아하는 것만으로 느꼈었다. 그러나 연정선생은 경주 율객이셨던 최윤 선생에게서 한학과 신은휴 선생에게 거문고를 수학하였으며 일제 말에는 경남 사천에 있는 다솔사에서 효당 최범술을 만나고, 수주 변영로, 일석 변영태, 산강재 변영만 등의 영향으로 구국청년단 활동을 하였던 연정 선생은 유달리 국악을 사랑하는 기인으로만 여겼으나 정치보다 위에 있는 것이 음악이라는 '예악 사상'처럼… '나라 음악을 바로잡아 좋은 음악이 세상에 퍼지면 사회가 좋아지고, 사회가 좋아지면 그 사회의 음악이 훌륭하다 했다.' 그래서 그 사회의 음악을 보면 정치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 21세기 준령에서 돌아본 선생의 발자취는 일찍이 '문화의 세기'를 예견한 선각자의 삶 바로 그 자체였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성격의 국악운동가 연정 선생이 있기에 오늘날 우리 후대들에게 훌륭한 정신문명을 남겨주었다.
항상 무정처, 무소유, 친자연으로 살았던 연정선생의 정신적 에너지는 우리후대 국악인들에게 남겨준 위대한 유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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