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플라멩코춤은 집시들의 춤으로 주술적인 의미가 강하게 느껴지는 춤이다. 사진은 세비야 극장에서 공연된 플라멩코 춤 공연모습. /사진=황길연 중구문화원 이사 |
스페인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2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새벽녘에 들려온 아잔(이슬람사원에서 예배를 위한 코란 낭송)소리와 세비야에 있는 한 극장에서 보았던 플라멩코 춤 공연이다.
모로코 카사블랑카의 숙소는 여행 중 묵었던 호텔 중 거의 최하급이었으나 새벽녘 호텔근처 모스크에서 들리는 아잔소리는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새벽 4시께 마치 꿈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낭낭한 목소리는 신비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처음 겪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아잔소리 못지않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게 바로 플라멩코 춤 공연이었다.
사실 이 공연을 보기 전에는 TV나 잡지책 등에서 손쉽게 접했던 장르로 치부해 관람을 권유하는 일행들에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마지못해 저녁공연을 일행들과 함께 관람하게 되었다.
플라멩코 공연이 진행되는 극장의 내부시설은 많이 낡아보였다.
입장했을 때 이미 무대에 공연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가수 2명과 젊은 기타리스트 2명 그리고 춤 보조 6명이 무대에 나와 있었고 곧이어 메인 춤 공연을 하는 다소 나이가 들어 보이는 무희가 등장했다.
우선 이 무대에 등장한 기타리스트와 노래를 부르는 늙은 신사들의 풍모부터 심상치 않아 보였다.
이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데 우리 일행들에게 극장 측에서 음료를 내어왔다.
입장료가 70유로인만큼 아마도 서비스로 음료수를 제공하는 듯 싶었으나 청량음료와 도수가 낮은 포도주 두 가지였다.
▲ 플라멩코 공연의 메인 무희.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과 동작으로 관객들을 압도했다. |
그녀의 얼굴표정에서 무언가 인간의 무의식 밑바닥에 놓여있는 감정을 끌어올리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우리네 무당과도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공연 내내 이 메인무희의 얼굴표정과 춤동작 하나하나에서 마치 감전된 듯한 충격이 다가왔다.
그만 이 플라멩코 춤에 빠져버린 것이다.
1막에 이어 2막에서 등장한 남자 무용수 및 여자 무용수 6명 그리고 기타반주와 노신사들의 중얼거리는 듯한 노래 그리고 캐스터네츠의 절묘한 조화는 메인무희의 카리스마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도 남았다.
공연을 보기 전 시큰둥하던 필자는 채 1시간도 되지 않아 온 몸에 전율을 느끼면서 그만 이 춤에 빠져들고 말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플라멩코 춤은 집시들의 춤으로 주술적인 의미가 강한 춤이다.
플라멩코(flamenco)의 플라(fla)는 라틴어접두사로 '뜨거운 것'을, 멩코(menco)는 '정착하지 않은'이라는 뜻을 지녔다고 하는데 결국 '어디에 도 정착하지 못하는 집시들이 정열적으로 추는 춤'이라는 뜻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집시는 인도계 혼혈로 1300년 이베리아반도에서 보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1500년 프랑스 파리에서 목격됐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집시는 거주지에 따라 루마니아의 보헤미안 집시, 이베리아반도의 이베리아집시, 중동집시 등으로 나누어진다.
우리나라에도 10명 가까운 집시가 있다고 하며 전 세계 집시가 없는 곳이 없다는 게 속설이다.
앞서 플라멩코 춤 공연을 짤막하게 묘사했지만 이 공연을 하는 이들 모두가 집시처럼 보였다.
▲ 세비야의 극장에서 본 열정적인 플라멩코 춤 공연은 필자에게 대단한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
안달루시아 속어의 '화려한'을 뜻하는 'flameante'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15세기 이후 스페인(에스파냐)에 정착하기 시작한 집시는 스페인 고유의 민속음악·무용에 그들의 독특한 멋과 양식을 첨가시켜 독자적인 음악과 무용을 계승 발전시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플라멩코를 창출해 냈다는 게 전문가의 풀이다.(동서문화사 '파스칼 세계대백과사전')
앞서도 기술했지만 플라멩코를 추는 메인무희는 무대의상을 여러 차례 갈아입는데 흑백의상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춤동작은 매우 다양했다.
지팡이를 짚고 나와 무대를 두드리기도 했고 발로 무대를 울리는 동작을 하다가 객석을 노려보기도 했다.
이런 춤동작 하나하나와 기타반주 및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듯한 가수들의 노래 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루어내 그 문화적 충격을 더했다.
전체적으로 이 플라멩코 춤의 매력은 약 1시간30분 동안 공연자 모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나라, 어느 공연을 막론하고 최선을 다하겠지만 플라멩코 공연을 한 이들 모두는 정말 1시간 30분 동안 있는 힘을 다해 관객을 사로잡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스페인 곳곳에 플라멩코 공연팀이 많기 때문에 공연이 시원치 않을 경우 관광객들은 금방 다른 팀을 찾는다고 하니 생계를 위해서도 이들 공연팀들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으로 짐작되고도 남았다.
스페인을 여행하는 동안 거리의 벽보에서, 또한 안내책자에서, 신문광고에서 플라멩코를 추는 장면은 손쉽게 목격되었다.
플라멩코 없는 스페인을 상상하기가 힘들만큼 플라멩코는 스페인의 상징처럼 등장하곤 했다.
다시 사전을 보면 플라멩코는 가요인 칸테(cante) 플라멩코, 무용인 바일레(baile) 플라멩코, 기타 솔로인 토케(toque)로 이루어진다.
칸테 플라멩코의 곡종(曲種)은 길고 무거운 내용의 칸테 혼도 또는 칸테 그란데, 쾌활하고 경쾌한 칸테치코, 그리고 이 2가지의 중간적 성격인 칸테 인테르메디오, 칸테 히타노·칸테 안달루스 등이 있다고 한다.
또 플라멩코에는 플라멩코 기타반주가 따르며 바일레 플라멩코에는 캐스터네츠가 많이 쓰이는데 모두 나름 고도의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된다.
▲ 서양화가 한인수 作 '플라멩코' |
아울러 우리와 엇비슷한 문화를 발견했을 때도 이와 흡사한 충격을 받는다.
플라멩코는 이 두 가지 면에서 필자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난생 처음 눈으로 접하는 플라멩코 공연은 낯설지 않으면서도 이 지역만의 문화적 콘텐츠를 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네 무당들의 굿하는 모습과도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인간은 그 모습과 살고 있는 장소는 달라도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에 인류라는 동류의식을 느끼게 된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플라멩코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스페인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명제를 플라멩코가 확인해 준 것이다.
국내에 들어와서도 플라멩코 춤의 충격은 한 동안 가시지 않았다.
문화적 충격은 한편으론 너무도 매력적인 감정이 아닐 수 없었다. /글·사진=조성남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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