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제9대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된 김능진(62)기념관장은 '질곡'과 '오욕'으로 통칭하는 이른바 '궁상의 역사'를 거부했다. 비록 일제에 강탈돼 식민지와 절대빈곤을 겪었지만, 나라를 되찾은 지 60여 년 만에 문화와 경제에서 세계적 국가로 발돋움한 우리 역사의 '자부심'을 강조했다.
김 관장은 1919년 3·1운동 당시 경북 안동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2년간 옥고를 치러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김병우 선생의 후손이다. 집안에 정부 포상 독립운동가만 3명이나 배출된 애국자 집안이다. 충청권 대학교수로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일평생 경영학자의 길을 걷다 한국민족의 '혼'이라 할 수 있는 독립기념관 관장으로 한 달여를 보낸 그를 만나 '가슴 펴고 떳떳이'의 역사관과 기념관의 미래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 우리 역사의 자부심을 강조했는데
▲ 김능진 관장은? 경북 안동출생, 경북고·연세대 졸업, 서울대 경영학 석·박사, 충남대 경영학부교수·경상대학장·경영대학원장·기획처장, 국립대경영대학원장협의회장, 광복회 회원. |
-기적을 만든 원동력은 무엇으로 보나?
▲우리 근현대사에서 한국민족의 성장원동력은 역설적이게도 6·25 남북전쟁과 일제 강점기라고 본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는 가장 밑바닥을 경험했고, 뼈를 깎는 노력 끝에 기적을 만들어냈다. 우선 절대 없어야 할 치욕인 식민지의 쓰라린 경험은 신분제 등 과거의 굴레를 벗어던졌다.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리게 됐다. 가장 밑바닥까지 갔으니 더는 잃을 것도 없었다고 봐야 한다. 치욕을 벗어나고자 절치부심할 수밖에 없었다. 남과 북의 끝에서 끝까지 밀고 밀렸던 6·25가 가뜩이나 빈약한 우리 사회를 초토화했지만 반면 역동성도 주었다.
-우리 역사에 친일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기념관장으로 올바른 역사정립의 해법을 제시한다면?
▲해방 이후 바로 청산되어야 할 반민족 친일행위가 지금껏 논란이 되는 것은 민족의 수치이며,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독립운동가들에게 죄스러운 일이다. 친일의 불가피성을 나름대로 강변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숱한 고초와 죽음으로 나라를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공(功)과 반민족 친일행위자의 과(過)는 국가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라도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더욱이 친일파가 떵떵거리며 잘사는 것은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친일의 대가로 후손이 잘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때문에 최근 친일 후손에 대한 토지환수는 민족정기를 세우는 일이라고 보고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 하지만, 선(先) 독립운동 후(後) 변절에 대해 무조건적 폄하는 곤란하다고 본다.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므로 최근 논란을 낳는 인물들에 대해 그들의 공과를 모두 알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대한 평가는 공과에 따른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 당시 상황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위 질문과 관련, 독립운동과 반일의 역사 이면에는 매국과 친일의 불행스런 역사도 있었다. 역사적 교훈으로 삼으려는 방안은?
- 최근 전시관 리모델링으로 관람객이 늘고 있는데 장기적인 경영개선 방안은?
▲작년에 세계적 수준으로 재개관한 최첨단 역사전시관 7개 관이 언론을 통해 많이 소개되면서 많은 국민이 찾아오고 있다. 또 편의시설도 확충하고, 다양한 문화행사로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문화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 경영전략회의를 통해 지표를 개발하고 있다. 관리 가능변수와 불가능변수를 찾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경영성과를 위해 기념관 고유목적이 훼손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독립기념관은 동곡과 서곡의 개발이 숙원사업인데 동곡은 이미 국립청소년수련원이 들어서 개발이 어려운 형편이다. 자칫 중복투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반면 서곡은 개발 필요성이 높다. 관장이 되기 전에는 수련원을 생각했는데 오히려 지금은 교육관련 컨벤션으로 활용했으면 한다. 시간을 두고 활용방안을 연구 중이다. 캠핑문화가 확산하고 있는데 서곡에는 아름답고 훌륭한 야영장과 자연체험학습장으로 10월이면 하루 1500여 명이 예약을 하고 있다. 자연과 역사를 체험하는 명소로 개발하고 싶다.
- 해마다 사라지고 훼손되는 국외 독립운동유적에 대한 적극적인 발굴과 보존대책도 필요한데.
▲기념관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 미국, 러시아 등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에 대한 실태 조사 및 보존 사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올해도 중국 류저우(柳州) 임시정부기념관에 3500만원의 사업비로 전시자료를 새롭게 지원하는 등 상하이(上海)와 충칭(重慶)의 임시정부청사를 비롯하여 모두 12곳의 주요 사적지에 대한 현지 보존 및 전시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그동안 2009년에는 미국 L.A 대한인국민회관, 상하이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매헌), 가흥 및 해염 임시정부 요인 피란처, 하얼빈 안중근기념관(조선예술전람관) 등에 대한 전시지원 사업을 완료했다. 일본과 미국 동·서부 지역 사적지 실태 조사사업을 시행하여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간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도록을 간행했다. 지난해는 유럽(5월)과 동남아(8월) 사적지 실태조사로 보고서를 발간했다. 올해는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맞아 중국 남만주에 산재한 관련 사적지에 대한 실지조사를 7월 중 완료했고 북간도 명동학교, 중국 서북부 윤세주기념관 등의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 독립기념관도 정부 경영평가 대상기관인데 획일적 평가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독립기념관은 나라사랑정신 함양을 위한 역사교육기관으로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무형의 생산을 창출하는 기관이다. 일반 공기업과 동일한 평가기준인 수익증대, 관리업무비 등 경영효율화 측면으로 평가받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올해는 본연의 목적사업인 전시, 연구, 교육 등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수익성을 기준으로 하는 경영효율화 점수가 하락해 낮은 평가를 받아 인센티브 제약 등 어려움이 예상된다. 아쉬운 점은 현재의 평가기준과 방법은 독립기념관과 같은 조직이나 교육기관은 특성상 한계가 있어 평가개선이 고려됐으면 한다.
- 집안에 독립운동가가 많았는데.
▲할아버지 김병우 장로는 3·1운동 당시 경북 안동에서 기독교와 천도교가 연합해 3000여 명이 참가해 봉기한 만세운동시 기독교를 대표해 시위를 주도하다 피체되어 2년의 옥고를 치렀다. 할아버지는 안동교회의 초대 장로로 농사를 지으며 평범하게 살아오셨으나 일제의 탄압에 울분을 금치 못하고 만세 운동을 하셨다. 고모부인 류후직 선생도 천도교를 대표해 할아버지를 도와 만세운동을 하시다 옥고를 치렀다. 작은 아버지인 김재성 장로도 젊은 나이에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르셨다. 당시 서울에서 세브란스의전에 다니던 아버님지는 파고다공원 만세운동에 참가한 뒤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숨기고 걸어서 안동으로와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만주로 망명했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독립기념관은 가을을 맞아 다음 달 22일과 23일 이틀간 대규모 문화행사인 '가을문화 한마당'을 준비하고 있다. 이 행사는 기념관이 수준 높은 콘텐츠로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문화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행사다. 다양한 역사문화체험 행사가 열리고 매주 일요일이면 주말 상설공연도 마련된다. 가을 여행철을 맞아 먼 곳으로의 여행도 좋겠지만 가까운 우리 고장의 독립기념관에서 가족들과 애국선열과 나라에 대한 자부심도 느끼고, 다양한 문화공연도 관람하고, 단풍나무 숲길을 걸으면서 자연을 느끼며 재충전하는 기회를 얻어보시기를 권한다. 독립기념관에서 가족들과 함께 뜻 깊은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란다.
대담=오재연 천안본부장, 정리=맹창호 천안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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