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들깨밭을 지나치다 보면 향긋한 들깨내음이 콧속에 스며든다. 들녘을 연노랑과 연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볏잎 사이로 여물어 가는 벼이삭이 수줍은 듯 고개를 떨구고 있다. 잠자리는 그 주위를 맴돌다가 사뿐히 내려앉아 잠깐 쉬어가곤 한다.
이러한 풍요를 구가하고 있는 들녘 사이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자연마을 앞을 지나다보면 수백년 동안 온갖 풍상을 겪어 온 경이로운 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어떤 마을에서는 그 앞에 작은 돌들을 원뿔대처럼 정성들여 쌓아올린 돌탑이 있거나 장승이나 선돌 등도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는 지난해에 정성들여 마을행사를 치른 흔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왼쪽으로 특별히 꼬아서 만든 왼새끼줄이 여러번 둘러 쳐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흰종이나 오색헝겊 등을 끼워 놓았다.
이런 광경들을 처음 접해보는 사람들은 상당히 의아해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것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해 놓았는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자연마을에서는 이 나무가 마을을 지켜주는 신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이 나무가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고 마을의 풍요를 기약해 주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새해를 맞는다든지, 칠월칠석 날이라든지, 중요한 마을 행사가 있을 때 신성한 장소인 이곳에서 모든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온갖 정성을 다해 마을 사람들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 마을의 풍요를 기원한다.
이러한 마을 행사를 통해 마을 사람 전체가 하나가 되어 마을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바탕이 된다. 이 나무가 곧 마을을 지켜주는 신목이다. 이 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숭배의 대상이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잘 보호되고 있다.
이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나무에 얽힌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생활속에서 보호장치를 마련해 오고 있다. 이 나무의 새잎이 무성하면 풍년이 든다든지, 이 나무의 가지를 꺾는다는지, 또 다른 어떤 해코지를 하면 신체의 특정부위에 병이나서 쓰지 못한다든지, 나무를 베려다가 죽었다든지, 해코지한 가정에 우환이 생긴다든지, 마을에 큰 변고가 생긴다는 것 등이다. 이러한 믿음이 그 지역에 도로를 내거나 개발을 하더라도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다른 것들은 건드려도 나무만큼은 건드리지 못하게 하거나 좋은 장소를 물색해서 고스란히 옮기도록 하였다.
요즈음의 생각으로는 마음에 잘 와 닿지 않겠지만 이러한 마을 사람들의 슬기가 수백년된 신목을 가능케 하고 있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고객창출협력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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