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칠 대전·충남 민예총 사무처장 |
흥분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얼마쯤 걷다 보면 또 익숙한 공간이 손짓한다.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지하의 작은 공간. 여기도 지하다. 들어올 때 느낌은 무슨 술집이 이렇게 가꾸지를 않았나 할 정도로 인테리어가 대충이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하다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아무튼, 대충이다. 그런데 편안한 느낌이다. 이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여느 술집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앞에는 선술집처럼 높고 긴 탁자가 놓여 있고 그 안쪽에는 엘피판이 적당히 진열되어 있다. 맞은편 구석에는 두 평 남짓한 무대가 있고 거기에는 드럼과 기타, 마이크 두세 개 서 있을 뿐이다. 넓은 바닥에는 탁자와 의자가 몇 개 아무렇게 늘어져 있다. 별로 규칙적이지도 않고 되는대로 늘어놓았다. 주인장이 있긴 하지만 먹고 싶은 것을 냉장고에서 꺼내 먹고, 안주를 시켜 먹지 않아도 전혀 눈치 주지 않는다. 물론 바깥에서 가져다 먹어도 시비를 안 한다. 앉아 있을 만큼 앉아있다 가면 된다. 아는 노래가 나오니 합창을 한다. 다들 신났다. 하루, 아니 일주일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듯이 목청을 높인다. 오늘은 노래 부르는 이가 제법이다. 프로 냄새가 조금 나는 것 같긴 한데 정말 잘한다. 대전의 예술인들도 많이 찾고 시민들도 찾는다. 여기도 해방구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사람들이 조금만 지나면 바로 동화되기 시작한다. 노래도 같이 부르고 연주도 같이하고 금방 하나가 된다. 자연스러운 어울림이다. 쉽게 적응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흥겨움 속에 또 다른 무엇인가를 느낀다. 이건 뭐지? 이렇게 편안히 동화됨은? 틀에 가둬 놓고 그 속에서만 느끼려했던 형식. 그것의 파괴가 자연스럽게 해방감을 만들어 내면서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찾아보면 우리 주변에 이런 곳들이 많다. 앞에 든 예보다도 더 작고 아름다운 갤러리, 공연장, 카페 등 아름다운 사람들이 작은 문화를 만들고 향유하고 있다. 이것 또한 행복한 일이다. 작은 문화가 살아있는 공간이 많은 마을, 그 공간을 아끼고 채워가는 많은 마을사람들, 이런 것이 우리가 바라는 '문화가 살아있는 사회' 아닐까 싶다. 그것이 진정 지역문화 발전의 초석일 것이다.
지역문화 발전을 이야기 하면서 어떤 거대 담론으로 한 번에 규정지으려 하거나 기발한 아이디어 몇 가지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이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계속해서 지자체의 장이 바뀌면 무엇인가 획기적이고 겉으로 표시가 많이 나는 큰 규모의 사업에 많은 예산과 행정력을 쏟아 붓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근본적으로 지역문화가 발전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뿌리 깊은 시민들 삶의 문화를 발현시키는 일일 것이다. 시민이 부리는 대상이 아니고 같이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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