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스로를 이겨내는 것이 가장 힘들었지만 그것이 가장 가치 있는 도전이라고 말하는 김충현 회장. 김회장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더 많은 장애인들이 장애를 스스로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올해의 장애극복상’ 액자가 거실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사)한국장애인미술협회 김충현(60) 회장의 자택을 찾았다. 협회 사무실이 서울에 있어서 거의 매일 KTX로 서울을 오간다는 김 회장은 곧 있을 ‘2011 장애인문화예술축제’를 앞두고 준비할 일이 많은 듯 했다.
2007년 장애인미술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대외적인 활동이 더 많아졌다는 김 회장. 장애인 예술가들의 권익을 위해 늘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20년 전 그날을 떠올리는 일은 여전히 힘든 일이라고 했다.
유명 주방가구 업체에서 간부로 일하던 1991년 4월 어느 날, 김 회장은 청주에 있던 건설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뒤 휠체어를 타고 생활해야 하는 1급 지체장애인이 됐다. 절망의 나락에 떨어져 고통스러웠던 나날, 그 모습을 보는 가족들도 힘들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만은 없었다. 재활치료를 위해 전국을 수소문했고 대전의 한 전문병원에 오게 되면서 가족 모두가 대전으로 왔다. 그렇게 김 회장의 인생 2막은 시작됐다.
하지만 성공적인 재활치료에도 차도와 인도의 높은 벽과 곳곳의 계단,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마음을 어둡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TV화면에 비친 한 장애인 미술가의 모습은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계기가 됐다.
▲ 장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장애 극복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김충현 회장은 기존의 관념적이고 획일화된 장애인 정책의 변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자료와 제안서를 더 많이 준비하고 조언할 것이라고 다짐한다.(사진은 2010년 한·중장애인 미술교류전 협약식 모습.) |
1995년에는 붓사랑서우회 회원 전원이 장애인미술대전 서예부문에 입선했고 김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은 붓글씨를 통해 새로운 삶의 도전을 함께 완성해 가기 시작했다.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은 김 회장은 대학에 들어가 조형미술학을 전공했고 서예와 사회복지활동을 접목하기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다. 또 여러 장애인예술단체의 일을 하면서 장애인 예술가를 위한 정책 자료와 제안을 관련기관에 꾸준히 제출하며 장애인 예술가들의 권익을 위해 일해 왔다.
2010년에 열린 한·중장애인 미술교류전을 시작으로 지난 4월 ‘한중일 장애인 미술 교류전’을 연 김 회장은 앞으로 아시아 태평양의 장애인 예술가들과의 교류전을 준비하고 있다.
“장애인이 된 지 20년, 장애가 있었기에 더 넓은 세상을 봤고 더 많은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었지요.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할 겁니다. 그래서 전 저를 스무살의 장애인 슈퍼맨이라고 감히 말합니다.”
장애인들이 마음껏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애인창작센터 개설의 꿈을 꾸고 있는 김 회장, ‘스무살 슈퍼맨’의 앞으로의 발자취가 궁금해진다. 온라인뉴스팀=이은미 프리랜서 기자
●김충현 회장은?
1991년 산업재해 사고로 1급 지체장애인이 된 이후, 94년 ‘붓사랑 서우회’라는 장애인 서예 모임을 조직, 붓글씨를 비롯한 여러 예술장르를 통해 장애를 극복한 많은 장애인 예술가들과 함께 장애예술인 권익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산업재해 예방교육 강사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사)한국장애인미술협회 회장과 한국장애인서예협회 이사, 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공동대표로 적극적인 활동을 하면서 대통령상인 ‘올해의 장애극복상’(2008)을 비롯 다수의 표창을 받았고, 여러 미술대전에서 입상하면서 장애 극복의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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