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영 출판사 따뜻한손 대표, 전 국무총리 공보실장 |
한마디로 안철수 신드롬은 정치권에 대한 오랜 불신과 기득권층의 이기적 행태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의 반작용이다. 안철수에 대한 기대와 지지에는 성공한 IT 전문가이자 서울대 과기원장에 대한 개인적 호감 이상의 정치적 · 사회적 의미가 함축돼 있다.
각계각층에서 경륜을 쌓고서 지도자 반열에 오른 정치인들은 보통 과거의 실적을 내세우며 남을 가르치려 드는 훈계형 지도력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런 식으로 말문을 여는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가 비슷한 경우다. 이 말이 대선 당시에는 '경험이 많아서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잘할 사람'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4년 뒤 오늘, 가계부채는 나날이 늘고 물가는 오를 대로 오르는 데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청년실업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한 달에 100만원도 안 되는 돈을 받는 아르바이트 세대·88만원 세대라는 용어가 그들의 고통을 대변한 지 오래다. 야당은 야당대로 '반값' 시리즈를 공약하며 나라의 곳간을 헐어 표를 살 궁리만 하고 있다. 이러한 기성정치권의 한복판에 박근혜가 있다.
아직도 국민이 향수를 느끼는 전직 대통령 딸이라는 후광에 '선거의 여왕'이라는 화려한 실적을 바탕으로 박근혜는 지금까지 부동의 1위를 지켜왔다. 그러나 지금은 대중의 시대·민초의 시대다. '국회의원'이라는 번듯한 현직이 있음에도 '한나라당 전 대표'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고 제왕이 유시(諭示)하듯 필요할 때만 한마디씩 던지는 선문답을 즐기는 한 그는 미래 지향적이며 가치 지향적인 동반자적 리더십을 이기기 어려울 것이다.
안철수 신드롬 덕분에 부산·경남(PK)에는 바야흐로 지각변동이 한창이다. 김두관이 무소속으로 한나라당 후보를 꺾은 지 1년여 만에 문재인·박원순까지 중앙무대 진출을 꿈꾸며 몸을 풀고 있다. 다음 대선은 PK가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면 역대 대선에서 영호남 대결의 승패를 쥔 충청도는?
이회창·심대평·이인제…. 충청권을 대표하는 세 정치지도자가 단일팀을 구성하기로 합의하고 만찬을 함께하며 과거사를 정리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다. 2002년 초만 해도 충청도는 인물 풍년을 구가하고 있었다. 지지율 1~2위를 다투던 이회창과 이인제,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돼도 충청도가 정권을 잡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그러나 충청도는 역대 대선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그때에도 다른 지역 출신 후보에게 연거푸 승리를 안겨 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변변한 대선주자도 내지 못하고 캐스팅보트도 상실한 채 곁불이나 쬐어야 하는 방관자로 양상이 변하고 말았다.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 '근초고왕'을 상기해 보라. 지금 방영되고 있는 '광개토태왕'이나 '계백'을 보라. 국가지도자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강인한 권력의지에 광범위한 주변세력이 결합하여, 고통 속에서 어렵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년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바꿔' 열풍이 드셀 것이다. 지난날이 크고 강한 것이 이기는 시대였다면, 이미 작고 빠른 것이 으뜸으로 세상 자체가 바뀌었다. 오늘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정직과 신뢰·희생과 봉사·양보와 배려 같은 작지만, 기본적인 동서고금의 가치다. 인물이 없다느니, 인구가 적다느니 하며 상황 탓을 하지 말고, 시대정신을 직시하고 감동으로 경쟁한다면 작은 것이 더 큰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승리도, 패배도 결국은 나 하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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