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수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두리한의원장 |
부동의 1위였던 여론조사에서 느닷없는 평지돌출 안철수 교수에게 한방에 나가떨어진 게 충격이었을 거다. 그래도 그렇지, 지지율에서 뒤처진 것에 대해 질문하는 기자에게(기자란 원래 질문하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다), 너 병 걸렸느냐 되묻는 건 초조하고 불안한 본심에다 짜증까지 더해 듣는 사람이 유쾌하진 않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탈영(脫營)이라고 부른다. 원래 귀한 신분에 있던 자가 갑자기 그 지위를 잃게 되어서 오는 정신적 충격과 갈등 때문에 생긴 증상을 탈영이라 한다. 가벼운 말실수 하나를 가지고 무시무시한 병명을 들이대는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도 들지만, 일국의 대통령을 꿈꾸는 분께 어울리는 언행을 요구하는 것은 유권자의 권리이기도 하다.
박 전대표의 탈영증에 대한 처방으로 균형감과 양질의 콘텐츠를 갖추길 권한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안철수 교수를 가리켜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한 분이라며 한나라당과 아주 잘 어울리는 분이라고 논평했다는데 과연 한나라당에는 나라를 위하는 우국충정 애국지사들로 가득하다. 다만 그 우국충정이 시간이 갈수록 아집과 자가당착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어 걱정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시장직을 걸고 막고자 했던 무상급식 문제만 해도 시민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모양새 좋게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었던 정책적 사안일 뿐이다. 본인만 옳고 다른 사람들의 견해는 틀리다고 생각하니까 애써 주민투표를 하게 되고 결국은 이런 풍파를 일으킨 것 아닌가.
정치란 갈등을 조절하고 쌍방의 타협을 통해 사회를 아름답게 바꿔가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박 전대표도 어떤 뜻이 있어서 대통령 선거에 나가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뜻과 꿈이 옳은지 그른지는 항상 되돌아봐야 한다.
나의 생각과 판단이 과연 옳은지,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늘 걱정하고 근심해야 한다. 정치 지도자란 결국 희망을 파는 상인이기 때문이다. 일방의 주장만 옳다고 여기는 외눈박이 정치로는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안길 수 없다는 사실을 지난 3년 반 동안 이명박 정권이 신물 나게 보여주지 않았던가.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에서 카이스트 교수직을 거쳤을 뿐인 이제 나이 50세의 안철수 교수에게, 여야 모든 지도자를 능가하는 엄청난 신뢰와 지지를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
그는 마치 예수님의 공생과 같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고행과 같으며 공자의 철환과 같은 삶을 살았다.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해 자기를 던졌다. 국민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의 겸손과 덕행과 의지에 열광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정하는 지엽말단을 가지고 공식 회의석상에서 큰소리가 오가는 민주당도 정말 회개하기 바란다. 바로 그런 모습에 질리고 염증을 내는 국민들이 많기에 안철수 교수에게 엄청난 지지가 쏟아지는 것 아닌가.
이제는 60년대 70년대 배고파 굶주리던 국민이 아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2만 달러 소득의 대한민국 국민이다. 정치인들이 내 생각이 옳으니 나를 따르라고 앞장서면, 웃기시네 하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는 게 현재 국민수준이다. 이들을 지도하겠다면 내 생각(만)이 옳다는 억지가 아니라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모두가 공감하는 최대공약수를 고민해야 옳다.
결과적으로 안철수 현상은 상대적으로 빈약하고 저열한 정치인들의 수준과 그들로 만족할 수 없게 눈높이가 올라가버린 국민들 간의 괴리가 빚어낸 고백 사이에 몰아친 태풍이다. 국민이 수준을 낮출 의사가 없으니 부디 그대들이 수준을 높이기 바란다. 아니라면 내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여의도 정가에 탈영증 환자들이 속출할 기세다. 늘 그렇지만 병은 깊어지기 전에 고쳐야 한다. 그게 싸게 먹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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