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의 길 위로 나아가는 기차의 여정이 그리운 한 노인이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
호남선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목포로 떠나기 위해 서대전역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김씨는 오랜만에 오르는 기차여행이 설레기만할 뿐이다. 김씨는 “목적지는 목포지만 가는 도중 중소도시나 마을에 내려서 하룻밤을 묵고 여유를 찾을 생각”이라며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아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아직은 젊다는 생각에 낭만을 찾아보고 싶다”고 전했다.
1박2일 등 여행을 소재로 한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가운데 기차여행을 향한 여행객들의 관심도 뜨겁다. 낭만 여행의 상징이기도 했던 기차여행을 통해 옛추억을 떠올리거나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위한 여행객들로 여전히 열차는 만원이다.
부동산중개업에 종사하는 홍지민(43·천안)씨는 총무를 맡고 있는 친목회의 다음달 모임에 대해 기차여행을 회원들에게 제안했다.
다음달 본격적인 여행시즌을 앞두고 관광버스로 나들이를 가는 것보다는 낭만적인 강원도 기차여행으로 그동안 멀어졌던 회원들간의 친목을 다져보자는 의미에서다.
홍 총무는 강릉역에서 삼척역까지 하루에 왕복 두 차례 운행되는 바다열차를 소개했다. 그는 바다 옆을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할 수 있어 올 가을 최고의 여행이라며 회원들에게 연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여름 방학동안에 청소년들을 기차여행으로 끌어모았던 것이 내일로(Rail 路) 티켓이었다. 만 25세 이하면 이 티켓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KTX를 제외한 모든 노선의 열차를 일주일동안 무제한으로 탑승할 수 있다. 청소년 대상으로 출시된 패스형 상품이어서 방학시즌인 여름과 겨울에만 한정적으로 판매된 것이지만 이 티켓을 통해 청소년들의 기차여행에 대한 향수가 극대화되고 있는 셈이다.
대학생들 역시 MT 코스를 열차 이용이 가능한 노선으로 계획하면서 방학 시즌은 그야말로 기차여행의 호황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열차카페를 통해 다양한 음식물을 구매해서 먹을 수 있으며 노래방, 오락실, 안마실 등이 구비돼 여행객들은 기차 안에서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중년 여행객 역시 기차여행의 매력에 빠지긴 마찬가지다.
주부 안영희(52·대전 서구)씨는 나이가 들어서도 자주 만나는 어릴적 단짝친구와 함께 가을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안씨는 “젊었을 때 기차여행을 하면 왠지 옆자리에 누가 앉을까 기대를 하기도 했었다”며 “삶은 계란을 먹고 오징어를 뜯던 옛 추억 때문이라도 먹을 거리를 좀 사들고 여행길에 오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차여행에 대한 인식이 낭만적인 여행이 아닌, 시간단축 여행으로 바뀌고 있기도 하다.
KTX의 등장으로 서울에서 대전까지 걸리는 시간은 겨우 1시간밖에 되지 않다보니 기차여행에 대한 예전의 향수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나기도 한다.
대전에서 서울에 있는 직장에 출퇴근하는 권지훈(34·IT업)씨는 “기차는 단지 먼 출퇴근 길을 빠르게 오갈수 있도록 해주는 현대문명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여행은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로 가는 게 낭만적인 것 같아서 낭만을 찾아 떠나는 기차여행이 지루할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코레일 한 관계자는 “기차여행에 대한 향수를 찾아떠나는 여행객들에게 어쩌면 옛날과 비교해 많은 낭만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며 “그렇지만 기차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레일 위에서 같은 곳을 향해 떠나는 '육지 위의 배'와 같아 타 본 사람만이 기차여행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경태 기자 biggerthan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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