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은남 체육팀장 |
박태환의 전신 수영복이 그랬듯이, 신소재로 만든 사이클, 테니스 라켓 등 모든 스포츠에 사용되는 운동용품과 기구는 첨단과학의 힘이 숨겨져 있다. 육상과 수영을 비롯한 기록경기 선수들은 0.01초, 0.01㎝를 넘어서기 위해 평생을 뛰고 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0.001초의 벽을 깨기 위해 첨단과학의 힘은 말할 필요가 없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신고 뛰는 운동화 가격이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보다 비싸고 사이클 국가대표 선수들이 타는 자전거 역시 수천만원을 훌쩍 넘는다. 장비가 별로 필요치 않을 것 같은 육상경기 역시 과학의 힘이 절대적이다.
지난 4일 막을 내린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유니폼을 눈여겨 본 사람이라면 선수들이 입은 유니폼이나 운동화가 종목별로 외형상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선수들의 유니폼은 불과 100~150g에 불과해 입은 듯 안 입은 듯(?) 말 그대로 깃털처럼 부드럽고 가볍다.
선수들의 스파이크화도 다 같아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단거리 선수들이 주로 신는 스파이크화는 스프링 역할을 하는 강화 플라스틱을 밑창으로 사용해 선수들의 추진력을 강화시켰고, 마라톤화는 신발 내부에 공기가 자유롭게 흘러들어 가 습기를 배출하고 내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숨 쉬는 소재 기술력이 적용되는 등 과학의 힘이 녹아들어 있다.
스포츠 용품과 장비 등 하드웨어 측면을 보면, 분명 스포츠는 과학이다라는 말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선수육성 등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본 스포츠의 현실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엘리트 체육의 근간인 학교 체육은 축구와 야구, 골프 등 일부 인기종목을 제외하면 선수가 없어, 겨우겨우 선수를 확보해 팀을 운영하고 있다. 어렵게 운동을 시작한 선수가 그 종목에 적합한 선수인지도 불분명하다.
일전에 전국체전 100일 강화훈련에 돌입한 선수들을 찾아볼 기회가 있었다. 단체 종목의 여자선수들은 땡볕에 시커멓게 그을렸고 팥죽 같은 땀을 흘리며 훈련에 몰입하고 있었다. 선수들보다 눈에 띈 것은 운동장 한쪽에 걸린 커다란 가마솥. 운동장에 웬 가마솥이냐?라는 질문에 A 지도자는 “선수들에게 지급되는 한 끼 식사비는 5000원이다.
자장면 한 그릇 값밖에 안된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선수들의 영양보충을 위한 체계적인 식단관리는 고사하고 체력소모가 많은 선수들의 체력보충을 위해 맘 놓고 고기를 먹일 수 없다는 것이다. 식사비가 턱없이 부족해, 하는 수없이 학교 내에서 삼계탕을 만드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종목 B 지도자는 매달 선수의 월세를 마련하는데 동분서주하고 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어린 선수의 월세를 박봉에서 지원하며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적인 지도보다는 선수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먼저 신경을 써야하는 일들을 학교체육 현장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선수층이 엷고, 선수들에 대한 지원도 넉넉지 않은 가운데 많은 선수가 한 부모 가정이거나 자신이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청소년가장 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코치나 감독교사의 희생이 없으면 팀을 유지할 수도, 이끌어갈 수도 없다.
학교 체육은 '스포츠는 과학이다'라는 말보다는 '스포츠는 복지다'라는 말이 더 현실적이 돼버리고 말았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하나도 못 땄다고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선수 자원도 부족하고 운동을 할 수 있는 모든 인프라가 부실함에도 무조건 메달을 따야 한다는 생각은 허황된 욕심이다. 육상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따야 한다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운동선수들이 처한 환경을 되돌아 봤으면 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운동하고 있는 동계 스포츠 종목 선수들에게 관심도 보이지 않다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면 또 얼마나 호들갑을 떨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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