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전 대전지방변호사회장 |
오히려 역설적으로 막판에 이러한 말이 튀어나오는 것은 법이 반드시 세상의 원칙이 아니며 정의가 아니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즉, 의견이 대립된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에게 함께 정의가 될 수 있는 점에 도달할 수 없게 되자 결국 “법대로 해라”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사실 이런 경우를 보면 법은 정의여서가 아니라 어정쩡하게 이것도 저것도 아닌 단순한 법의 논리만을 가지고 무를 칼로 자르듯이 싹둑 잘라버리는 편리한 수단으로 보이기도 한다. 더 나아가 법은 정의가 아니라 법을 만든 사람이 '이것이 법이다'라고 엿장수 마음대로 선을 그은 것뿐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까?
법이란 이처럼 입법자의 의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 도대체 법에 사람들이 의지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라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항상 싸우기만 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정의를 맡긴다고? 한심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이것은 사실인 것이다.
세간에 들끓던 여론과 뭇사람들의 비난도 법원의 판결에 의해 잠잠해 지고 서서히 잊혀져간다. 세상에서는 법원의 판결이 바로 정의의 종결자(?)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법도 알고 보면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단지 세상사 그 수많은 상황 속에서 선을 그어놓고 그 선 안에 있으면 적법한 것이며 그 선을 넘으면 위법하다고 하는 식의 어린아이들 팔방놀이 같은 것이다.
복잡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의식을 돌아보라. 행정절차에 있어서 또는 어떤 공적인 행위를 하려고 할 때에 제일 먼저 찾는 것은 앞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행위가 올바른 것인가라는 반문이 아니라 오히려 법에 위반되는가 만을 알려고 하며 법에 위반되지만 않는다면 정의로움 같은 것은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다.
물론 법이니까 정당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법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면 정의롭지 못한 법이 있다는 점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세상에는 전혀 정의와는 먼 법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대하여 정말 많이 놀라곤 한다. 우리 헌법의 최고의 원리로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라는 표현이 있다.
모든 법은 바로 이 정신에 따라 만들어져야 하며 헌법은 이를 우리 사회의 기본가치로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신에 위배되는 법은 헌법에 위반되는 것으로서 무효가 선언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재개발지구의 어렵게 살고 있던 세입자들을 보라. 조그만 단칸방이라도 힘든 일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고 잠을 청할 수 있는 그런 장소, 그들에게는 그런 장소가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그네들이 재개발이라는 이름하에 쫓겨나 결국 삶의 터전을 잃고 생존조차 위협받고 있는 그 이유가 바로 재개발에 관련된 법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 물론 우리사회에 유행처럼 재개발이 범람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사람들은 법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재개발에 관련한 우리의 인식수준인 것이다.
그러나 생활의 터전을 갖고 싶다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바람조차 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그러한 법이 과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기본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사회가 인간의 자유를 존중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의 자유란 무엇인가? 그들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서 갈 곳 없어 방황하는 자유만이 있을 뿐인 것이다.
법원 앞에 가 보면 가끔 피켓을 들고 재판결과에 대하여 항의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미 정의의 종결자(?)에 의하여 심판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그 따가운 눈총을 느끼면서도 뙤약볕 아래에서 땀을 흘려가며 비참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은 왜일까?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법원의 판결에 절망하고 억울해 하는 것을 보면서 법원의 판결은 결코 정의로운 것만이 아니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법이 반드시 정의로운 것만이 아니니 법에 따라야 하는 법원 역시 항상 정의로울 수만 없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때 우리사회가 잊고 있는 한 마디, 바로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성경의 말씀이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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