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원배 목원대 총장 |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생겨난 현상 가운데 하나는 대학에 낭만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취업 준비를 위해서 각종 스펙을 쌓다 보면 전공 공부조차 소홀히 하기 쉬운 판에 전공과 무관한 취미활동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그저 하루 종일 도서관에 앉아서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외국어 공부와 각종 수험 서적이나 뒤적거려야 하는 학생들이 안쓰럽다.
필자도 교수가 되기까지 무수한 시험을 치러봤지만 시험공부는 진정한 공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공부는 공자가 말했듯이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이어야 한다. 단편적인 지식을 한꺼번에 머리에 쑤셔 넣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도 이것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취직을 하려면 모두 그런 것들을 요구하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요즘의 학생들이 졸업 후에 취업을 한다 해도 맡겨진 일을 잘 해낼지 걱정이다. 시험은 필연적으로 남을 떨어뜨려야 하는 것이기에 시험공부에 대학 4년을 다 보낸 학생들은 은연중에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되어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한 두 자녀밖에 없는 가정에서 외롭게 자란 젊은이들인지라 협력하여 무엇을 하는 일에 서툴 수밖에 없을 텐데, 사회마저 이기심을 조장하는 체제로 되어 있으니 앞으로 이 나라가 어디로 갈지 심히 걱정된다.
어느 기업의 인사담당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그의 회사에서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일정한 기준으로 대략 정원의 몇 배수를 뽑아 놓고 그들에게 어떤 게임을 하게 한단다. 그런 상황에 놓이면 그것이 시험의 한 과정이란 것을 잘 알고 있는 대부분의 수험생은 면접관의 눈에 띄기 위해서 무리를 한단다. 이를테면, 대부분 공을 패스하지 않고 단독으로 드리블을 하다가 골인을 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축구의 경우 스물 두 명의 선수 중에 골 넣는 사람은 고작 해야 한 두 명인 것을 감안하면 그것은 대단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면접관이 보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란다. 수천에서 수만명의 사원들이 더불어 일해야 하는 회사의 일꾼을 뽑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들이 게임을 하면서 얼마나 두각을 나타내는가가 아니라 남을 얼마나 배려하는지, 남과 얼마나 잘 협력해서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골을 넣었어도 단독 플레이는 감점요인이란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단독플레이를 잘하는 사람들을 뽑으려 하는 대다수 기업들의 선발방식에 비하면 참으로 훌륭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을 키우려면 대학에 낭만을 돌려줘야 한다. 낭만을 그저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낭만은 여유이고, 여유로움을 가질 때 비로소 개인을 구성하고 있는 담론이 풍성해진다. 졸업 후의 일을 걱정하지 않고 대학 다니는 동안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연극이든 독서든 다 사람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우리나라를 만든 주역인 베이비붐 세대들은 잘 알 것이다. 그들이 대학 다닐 때 데모 때문에 얼마나 많은 휴강을 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그들의 자아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그 때는 스펙이란 말이나 있었던가.
최근 들어 일부 대기업이 사원모집의 기준을 바꾸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첨단 기술이 더 이상 갈 바를 모르는 요즘, 전공지식이나 얄팍한 스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전공과 관계없이 인문학적 소양도 갖추고 있는지, 고전을 얼마나 읽었는지, 각종 동아리 활동은 얼마나 했는지, 국토 대장정 같은 것에 얼마나 참여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봉사활동을 얼마나 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도서관에 처박혀서 시험 점수만을 높인 사람들을 더 이상 찾아서는 안 된다. 사람 냄새나는 사람을 찾기 바란다. 대학에 낭만을 돌려 줄 때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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