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순택 논설위원 |
유리왕 9년이면 서기 32년이다. 이때 이미 한가위는 신라의 대표적인 명절이었다. 한가위가 언제부터 명절이 됐는지 시원(始原)은 알지 못한다. 신라 사람들이 무예(武藝)와 베짜기를 겨루고 시상하는 날이 뿌리라는 설 등 여러 설이 있으나 삼한(三韓)시대부터 있었던 농공필(農功畢), 즉 추수감사의 제전이 그 뿌리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렇게 긴 세월 변하고 다듬어져 온 명절이 한가위다.
그런데 “올해 같은 추석은 처음”이란다. 다락 같이 오른 물가 때문에 탄식이 깊다. 긴 한가위 역사에 가난한 서민이 위패만 달랑 모시고는 두어 가지 음식으로 차례를 지낸 일이 어디 한두 번이겠느냐마는, 변변한 차례상 하나 차릴 수 없는 서민들의 심정은 태산을 담은 듯 무겁다.
물가상승률이 어떻고 대전시 물가상승률이 전국 최고라는 둥 수치로 따질 일이 아니다. 시장에 나가보라. 할 말을 잃는다. 경제대국임을 자랑하는 나라의 정부가 도대체 무얼 하고 있기에 이 모양 이 꼴인가 하는 원망이 한숨에서 묻어난다.
동이로 쏟아 붓는 듯한 폭우에 채소와 과일의 작황이 최악 수준으로 떨어지는 걸 정부만 몰랐다는 건가. 대통령이 “송구하다”는 말로 끝날 일이 아니다. 추석 명절 덩두렷한 달을 보며 저 달로 허기를 때우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게 생겼다.
방랑시인 김삿갓은 '송편'이란 시를 썼다.
“손바닥에 빙빙 돌려 새알을 만들고, 손가락 끝으로 조개 같은 입술을 합치네. 금 쟁반에 봉우리 천개를 쌓아올리고, 옥 젓가락으로 둥근 떡을 들어 올리네.”
가족들과 둘러앉아 송편을 빚으며 썼는지, 송편을 한 쟁반 받아들고 반가움에 썼는지는 모른다. 그의 행색을 미루어 짐작컨대, 어느 타향 땅 길바닥에 주저앉아 가족과 송편 빚던 날을 떠올리며 썼을 것이다. 김삿갓처럼 눈물을 삼키며 송편을 '생각'으로 먹는 사람은 없을 것인가.
떡을 빚는 이는 송편을 '희망 떡'이라고 했다. 백제 의자왕 때 거북등이 발견됐는데, '백제는 만월이요 신라는 반달'이라고 쓰여 있었단다. 백제는 보름달이니 이미 꽉 차 시나브로 기울 것이요, 신라는 반달이니 앞으로 점점 흥할 것이라고 점술가는 풀이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 사람들이 반달 모양의 떡이 앞으로의 운을 뜻한다고 하여 송편을 빚게 됐다는 거다.
송편의 묘미는 먼저 보름달을 만들고 소를 넣은 뒤 반달로 접는 거란다. 보름달을 먼저 보여주는 건 지금은 반달이지만 보름달이 되는 희망을 가지라는 뜻이다. 보름달처럼 성숙하고 풍성한 사람이 되려면 반달 때부터 속을 채워 나가도록 더 힘써 노력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라는 거다.
그래서 송편은 희망 떡이요, 송편도 먹을 수 없게 만드는 세상은 희망 가짐을 빼앗는 세상인 셈이다. 정부가 무얼 하고 있느냐는 원망이 나올 만하다. 등 따습고 마음 편히 살도록 해달라는 소박한 소원을 제 손으로 뽑은 정부를 놔두고 한가위 보름달에 빌어야 하는 민심이 안타깝다.
정치에 기대하기엔 애당초 글렀다. 올해도 정치권은 추석 민심잡기에 나선다고 호들갑을 떨 것이고, 분노한 민심에 반성하는 척 할 것이다. 그리곤 까맣게 잊을 것이다. 작년 들은 민심을 국정에 충실히 옮겼다면 올 추석이 이토록 팍팍하겠는가. 진정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끼리나마 따스한 온기를 나누고 송편을 나누고 희망을 말해야 하겠다. 명절 때면 가난한 이웃의 굴뚝에 연기가 나는지를 살피는 게 우리 인심이었다. '더도 말고'는 그만두고라도 '덜도 말고' 추석은 돼야 하겠다. 서로 보듬고 때로는 상처 주는 민감한 속살들이 가족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만으로 그게 어딘가. 특히 아이들에게 명절은 한평생 즐거움을 길어 올리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어야 한다. 그래서 한가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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