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땅… 텅텅.’ 동구 인동의 한 골목길, 쇠망치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대도시 한복판을 지키고 있는 ‘용신대장간’을 찾을 수 있다.
▲ 수많은 인생역정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전통을 지키며 3대째 인동 골목에서 용신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는 이호일씨. 대전문화연대로부터 전통시장 명인으로 선정되기도 한 우리 시대의 명인이다. |
“70여년 전 일제 때 할아버지께서 대장장이 일을 배우셨어요. 그 때는 800여 가지의 도구를 만들 수 있었는데, 아버지 대에 와서 종류를 줄이는 대신 특화된 도구를 만들었지요.”
누구나 다 만들 수 있는 도구 대신 용신대장간에서만 만들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덕분에 아버지 대에 이르러 용신대장간은 크게 이름을 얻을 수 있었다.
일꾼도 여럿 두고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하다는 이씨. 뜨거운 불 앞에서 모든 과정을 손으로 해야 하는 대장간 일, 그 고된 일을 하는 아버지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맏아들 이씨는 낮에는 아버지 곁에서 대장간 일을 도왔고, 밤에는 충남기계공고를 야간으로 다녔다.
하지만 한창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 이씨는 쉴 틈 없이 돌아가는 대장간 일이 힘에 겨웠고 도망치듯 군에 입대했다. 남들은 힘든 군생활이라고 했지만 이씨에겐 오히려 휴식의 시간 같았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1년 제대 후에는 대장간으로 돌아와 아버지 밑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돕는다는 것만으로도 대장간 일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밑에서 일을 하며 몸으로 감각을 익힌 지 15년, 그 무렵부터 ‘대장장이의 기술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닫게 됐다는 이씨.
한때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려고도 했고, 뜨거운 쇳물에 온몸이 화상을 입은 적도 있었기에 이씨는 고된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으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금 쇠망치를 잡고 칼을 매만지는 자신을 보면서 대장장이 일이 천직임을 알았다.
▲ 할아버지 대부터 이어져 온 기술이지만 요즘도 새로운 걸 개발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호일씨는 후회한 만큼 배우는 것이라며 젊은 세대들에게 미리부터 걱정하지 말고 도전하고, 인내하라고 당부한다. |
“제주도에서 주문하는 오랜 단골도 있습니다. 주문하는 사람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주는데, 이젠 주문이 들어오면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지 머리 속에 다 그려지죠.”
힘들고 고된 일을 마다하는 세태지만 남이 배우지 않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씨는 몇 해 전 신문에서 ‘우공이산(愚公移山)’과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이란 고사성어를 보며 무릎을 탁 쳤다. 거꾸로 가는 것이 진정한 도(道)이며 꾸준히 한 가지 일에 몰두하다보면 목표를 이룬다는 뜻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깨달음과 노력의 결실일까? 이씨는 대전문화연대로부터 전통시장 명인으로 선정되기도 한 우리 시대의 명인이다.
산을 옮기는 우공의 마음으로 오늘도 대장간을 지키는 이씨의 힘찬 망치질과 담금질에 새로운 희망이 깃들어 있다. 온라인뉴스팀=이은미 프리랜서 기자
●용신대장간 이호일씨는?
충남기계공고를 야간으로 다니며 아버지 밑에서 대장간 일을 배운 뒤 용신대장간만의 특화된 도구들을 대를 이어 만들어 오고 있다.
대장간 일을 하고 있음에도 용신철공소로 걸려있던 간판을 용신대장간으로 바꿔 달면서 도심 한복판에 있는 대장간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틈틈이 찾아오는 이들에게 대장간 일에 대해 아낌없이 설명을 해주며 인동 골목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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