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일규 한남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
문전 근처에서 패스를 받는 순간을 생각해보자. 그 때 선수의 뇌에는 볼의 높이와 방향, 스피드 등에 대한 시각 정보가 보내진다. 또 팀 동료와 상대 수비수의 위치, 동료선수의 외침 등 주변 상황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 내부로부터도 몸의 중심이동이나 관절 축의 변화 등에 대한 정보가 뇌에 보내진다.
뇌는 정보들을 통합하고 분석하여 적절한 움직임을 결정한다. 즉 슛을 할 것인지, 다시 패스할 것인지, 아니면 일단 볼을 잡고 드리블로 돌파를 시도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뇌는 그 결정에 따라 신경경로를 통해 해당 근육에 명령을 하달한다. 처음 정보를 받아들이고 움직임을 수행하기까지의 복잡한 과정은 대체로 0.5초 이내의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데, 그 중 뇌에서 정보를 통합·분석해 판단을 내리는 과정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처럼 수많은 정보들을 동시에 받아들여 순식간에 처리하는 뇌의 능력은 경이롭다. 이 정보처리 능력은 대부분의 스포츠종목에서 순발력과 더불어 중요 요건이다. '머리로 운동하라'는 이러한 의미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렇게 스포츠 활동 중 시시각각으로 처리되는 정보들은 책 등에서 암기·이해되기를 가만히 기다려주는 일반적 정보와는 그 성격이 다른 역동적 정보(dynamic information)다. 스포츠 활동은 우리의 뇌가 이 역동적 정보들을 처리하는 무수히 많은 연습기회를 갖게 해준다.
그런데 이 역동적 정보의 처리경험들은 통념상 '머리가 좋다'거나 '암기력이나 이해력이 높다'는 말과 관련이 없을까? 최근에 밝혀진 과학적 발견들은 이 둘의 관계가 매우 밀접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필자의 대학시절만 해도 운동을 할 때 뇌의 혈류량은 변화가 없는 것으로 배웠다.
심지어 막연히 운동 중에 뇌혈류가 감소해 머리가 나빠지게 된다는 편견도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오면서 운동 중에는 뇌혈류가 최대 30% 가까이 증가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는 감각과 정보처리, 균형과 협응 동작을 담당하는 뇌영역의 활동수준 증가에 부응하는 현상이다. 또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운동에 의해 뇌에서 BDNF 등과 같은 신경성장인자의 생성이 촉진된다는 점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뇌세포는 새롭게 생성되지 않고 20세 이후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매일 수 만개씩 죽기만 한다고 알려졌었다. 그러나 새롭게 탄생한 세포의 염색법에 의해서 일생에 걸쳐 뇌세포도 생성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특
히 운동은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해마 부위에서 신경세포의 생성을 촉진한다는 것이 확인됐다. 반면에 스트레스, 알코올, 당뇨 등은 뇌세포의 사멸을 촉진한다.
운동은 이들 질병에 예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차적으로도 뇌세포 죽음을 억제한다. 머리만이 아니라 다리로 공부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학교의 체육시간은 뇌에서 역동적 정보를 처리하는 시간이며, 평생 '다리로 공부하는 법'을 익히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얼마 전 초·중·고생의 체력수준이 9년째 지속적으로 하락해 중·고생의 절반이 최하등급인 4, 5등급의 체력수준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먹고 자고 통학하고 공부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남는 시간이 하루 평균 2시간 16분인 상황에서 창의력이 개발될 리 만무하다.
아직도 학교에서 체육수업을 하면 '공부할 시간을 뺏긴다'라고 생각하는 일부 학부모와 교육담당자들에게 바란다. '공부는 머리로만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속히 벗어나기를.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