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60년, 한국 현대사를 함께한 중도일보
중도일보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공보부에 제호를 등록했다.
당시 사주인 이웅렬 회장은 해방 직후인 1946년 충남일보를 창간했다 한국전쟁 발발로 발행이 중지되자 “압록강에서 제주도까지 그 중심이며, 신도시로 넉넉한 터전을 지닌 대전에 '중도(中都)'를 건설하자”는 의미를 담아 '중도일보(中都日報)'라는 새 제호를 등록하고 창간 준비에 들어갔다.
▲1951년 전쟁의 포연속 中都건설 기치로 첫 발
1년 여 뒤인 1951년 8월 24일 중도일보는 동구 중동 사옥에서 타블로이드 크기의 마분지에 인쇄된 창간호를 선보이며 첫 발을 내딛였다. 전시속보판이었다. 당시 신문의 주요 역할은 신속히 전황을 알리는 것이었다.
당시 신문이 제대로 된 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전후의 일이었다. 전후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한 중도일보는 1955년 4월 사옥을 이전, 대흥동 시대를 열었으며, 1958년 5월에 중구 선화동 현 교보빌딩 자리에 둥지를 틀고 1959년 지면을 4개면으로 증면 발행하기 시작한다.
▲1960년대 지역발전 선도, 대표 일간지 자리매김
▲ 1966년 7월 31일자 '정부청사 대전유치를 말하다' 게재 지면. |
지역발전을 선도하며 사세를 확장하기 시작한 중도일보는 1966년에는 서울을 비롯 전국 84개 지역에 취재 및 보급망을 갖췄고, 이듬해에는 일본에까지 지사를 설치했다. 계속된 사세 확장은 1970년 중구 대흥동에 당시로서는 한강 이남에서 최고층 건물로 알려진 지하 1층, 지상 10층 규모의 신사옥 기공으로 이어졌고, 72년 3월 '경암빌딩 시대'를 열며 당시 시간당 3만부를 찍을 수 있는 초고속 윤전기를 도입, 중도일보는 확고한 지역의 대표 일간지로 자리를 잡았다.
▲1973년 유신독재 칼날아래 꺾여진 '저항의 펜'
하지만 야성(野性) 강한 지역 신문으로 정평이 나있던 중도일보의 화려한 날갯짓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슬퍼런 유신독재의 칼날 아래서 강제 폐간이라는 시련과 고난의 세월을 맞게 된 것이다.
군사정권의 '1도(道)1사(社)' 정책으로 폐간된 1973년은 중도일보에게 찾아온 암흑기였다. 그해 5월 24일 지령 제7070호를 끝으로 중도일보는 문을 닫았고, 다음날을 기해 '충남일보(忠南日報)'라는 새 제호로 대전일보와 합병된다.
암흑기를 맞아야 했지만 '저항의 펜'을 꺾으려 했던 군사독재의 칼날도 영속되지는 않았다. 이 땅에 찾아 온 민주화와 함께 중도일보는 시련의 세월을 뒤로하고 어쩔수 없이 꺾어야만 했던 필봉(筆鋒)을 다시 우뚝 세운다. 복간추진위원회가 구성돼 1987년 12월 28일 법인등기와 1988년 1월 21일 사업자등록을 마치고 9월 1일 복간호(지령 제7071호)를 통해 화려한 부활을 알린다.
▲1988년 복간… 시대 변화 선도
▲ 1988년 복간당시 발행지면. |
91년 이기창 사장 취임과 함께 타블로이드 100면을 전면 컬러로 발행하는 자매지 '월간화보 중도포커스'를 창간했고, 그해 12월 갈마동 신사옥으로 이전하며 '둔산시대'를 열었다. 92년 10월부터는 6개국 7대 도시 해외통신원을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94년에는 지면을 16면에서 20면으로 증면하고 창간 43주년을 기해 석간에서 조간으로의 전환을 선언한다. 이어 96년 12월 전면 가로쓰기와 한글 제호를 도입하는 등 발빠르게 시대 변화를 선도하고 쫓아왔다.
▲다시 찾아온 시련 속 오뚝이 정신으로 창간초심
그런 와중에 IMF외환위기를 거치며 경영난에 봉착하면서 급기야 2003년 다시 한번 문을 닫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해 9월 중도일보는 김원식 충청매일 사장이 인수 합병하면서 오류동 사옥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리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심기일전, 2006년 기사집배신시스템 구축과 2007년 인터넷방송 개국, 2008년 자매지 '월간충청' 창간 등 점차적인 사세 확장을 거쳐 2008년 6월 현재의 오류동 신사옥으로 이전했고, 그해부터 4년 연속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우선지원대상사로 선정되며 지역 정론지로서의 위상을 높여오고 있다. 여러 부침 속에서도 오뚝이 처럼 일어선 중도일보는 창간 초심을 잃지 않고 지역민과 함께 호흡하며 쉼없이 달려왔다.
올해는 창간 60주년을 맞아 제호를 다시 한자로 변경했다. 제호에 담긴 창간의 의미를 되새기며 다시 한번 지역과 함께 성장ㆍ발전하고 도약하기 위함이다.
이종섭 기자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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