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를 빛낸 위대한 화가들의 고장… 인류 미술의 寶庫

세기를 빛낸 위대한 화가들의 고장… 인류 미술의 寶庫

92년의 긴생애 동안 5만여점의 작품 남긴 '피카소' '근대회화의 창시자' 고야, 천부적 예술적 기질 지녀

  • 승인 2011-08-25 14:05
  • 신문게재 2011-08-26 12면
  • 조성남 본사 주필조성남 본사 주필
[조성남 주필의 스페인 문화산책]-8.스페인의 화가들(벨라스케스, 고야, 피카소 등)

▲ 1970년에 발표된 피카소 작 '아비뇽의 처녀들'. 미술사 최초의 입체주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원근법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의 면위에 뒤섞여서 처리됐다.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 1970년에 발표된 피카소 작 '아비뇽의 처녀들'. 미술사 최초의 입체주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원근법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의 면위에 뒤섞여서 처리됐다.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햇빛, 바다, 예술.' 피카소가 태어난 스페인 남부 코스타 델 솔(태양의 해안)의 중심도시 말라가를 표현한 말이다. 필자는 지난 6월 12일 저녁 말라가 해변가의 숙소 엘 그레코호텔에 도착했다. 말라가와의 인연은 이처럼 스페인의 화가로부터 시작됐다. 20세기 미술의 가장 위대한 화가가 태어난 곳에 와서 묵은 호텔 이름까지 스페인이 자랑하는 화가인 엘 그레코(El Greco)였다.

필자는 사실 피카소 말고 스페인의 화가와 미술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스페인을 돌아보면서 필자는 스페인이야말로 인류 미술과 건축의 보고(寶庫)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성당은 그 자체가 살아있는 건축예술이며 미술관이었고, 거리의 아주 오래된 집과 건물 역시 조형미를 머금고 있었다. 필자가 하루 머물렀던 말라가의 엘 그레코호텔 주위의 크고 작은 호텔과 집들 역시 하나같이 예술적인 감각을 뽐내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인채 피카소생가로 향했다. 20세기 살아있는 신화 피카소의 생가는 메르세드광장 골목에 있었는데 2층에 그의 가족사진을 비롯해 피카소가 활동했던 모습, 그가 만든 도자기와 피카소 부친이 그린 유화도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 작업실의 피카소.
▲ 작업실의 피카소.
관리인은 내부모습을 촬영하지 못하도록 해 필자는 1층 기념품 파는 곳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그의 작품집 1권을 들고 피카소의 유소년시절 놀이터였다는 메르세드광장의 한 건물 계단에 앉아 피카소와 스페인의 화가들, 더 나아가 그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잠겼다.

잠시 생각하다 맞은 편에 있는 로마시대 유적지와 이슬람성채를 보면서 문득 스페인예술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그 성격이 조금 다를 것이라는 상념이 스쳤다.

스페인의 독특한 지리적 특성이 미술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생각인데 과연 그러했다. 스페인은 유럽·아프리카·지중해·대서양 등 4대 문화권의 접점에 위치한 특수조건 속에서 이곳만의 특이한 혼합양식을 낳으며 발전해왔고, 미술 역시 특유의 혼합양식을 이루었다.

아울러 중세에서 18세기에 걸쳐 국교인 가톨릭과 밀접하게 연계되면서 맥락을 이어왔다. 또 17세기와 20세기에 스페인미술이 일대 발전기를 맞았는데 그 중심장르가 회화였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우리는 흔히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로 피카소(1881~1973)를 꼽는다. 피카소는 스페인의 화가이면서 또 '20세기 최고의 예술가'로 꼽히는 인물로 살아서 이미 신화가 된 예술가다.

▲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된 고야의 '눈보라 속을 걷는 사람들(원제:La nevada).
▲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된 고야의 '눈보라 속을 걷는 사람들(원제:La nevada).
피카소의 생애를 보면서 필자는 주위의 화가들에게 화가(비단 화가뿐 아니라 예술가 모두)는 오래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92년의 긴 생애 동안 피카소는 무려 5만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무서운 예술적 열정과 긴 생애가 아니면 이 같은 엄청난 작품 수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피카소의 생가에서 본(그의 작품집 뒤표지에도 실린) 작업하는 모습의 피카소 얼굴에는 섬뜩한 광기가 느껴진다.

그가 살아생전에 이미 유명해 진 것은 끊임없는 열정과 실험정신으로 기존 그림의 틀을 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그림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그려야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느냐의 물음이 나오게 된다. 피카소의 경우 끊임없이 자기혁신을 통해 사물을 구성해 나가는 예술혼을 그치지 않았다.

피카소에 대한 얘기는 이쯤하고 프라도미술관 편에서도 소개한 것처럼 스페인사람들이 꼽는 3대화가가 엘 그레코(1541~1614),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 프란시스코 데 고야(1746~1828)다. 이 세 사람의 화가들 역시 그들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한 화가들이었다는 점에서 그들과의 만남은 필자에게 미술을 보는 또다른 눈을 일깨워주었다.

톨레도 산토토메성당에서 마주한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당시의 시대상뿐 아니라 숨겨진 인간의 욕망을 포착해 표현한 그의 대표작이다. 그리스인이라는 뜻의 그레코는 출생지가 그리스의 크레타섬 인근으로 1577년 무렵 스페인 톨레도에 와 정착했고 톨레도성당의 전속화가가 됐다.

▲ 고야의 자화상.
▲ 고야의 자화상.
그의 대표작인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1300년 초 당시 오르가스백작이라는 사람의 장례식을 300년 후 그린 것으로 그는 자신의 재산 90%를 기부해 호사스런 장례를 치렀고 그의 영혼이 천국으로 가는 모습이 그려졌으며 이를 부러워하는 군상들의 표정이 살아있는 것처럼 나타나 있다.

그레코는 뛰어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성당의 제단화, 제단건축 조각 등까지 많은 작품 활동을 했고 길쭉길쭉한 모습의 성인화는 말기에 가면서 더욱 그의 독자적인 화풍으로 번져 다소 괴기한 느낌도 주게 된다.

그레코이후의 또 한사람의 걸출한 화가가 근대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디에고 벨라스케스다. 그의 작품은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에 걸려 있다.

세비야 출신인 그는 1623년 세비야 재상(宰相)의 도움으로 펠리페 4세의 수석 궁정화가 겸 궁정관리가 돼 초상화·종교화·주방화 등을 그렸고 특히 일상적인 주제에 뛰어난 기법을 발휘했다.

그 역시 한 작품 한 작품을 새로운 실험의 장(場)으로 삼는 예술혼을 지켜나갔다. 그의 대표작인 '시녀들(Las Meninas)'은 미술사에 회자적인 작품 중 하나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어린 공주인 마르가리타인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등장인물 여럿이 모두 주인공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만큼 벨라스케스의 터치가 원근법과 테크닉 모두 뛰어나기 때문이다.

맨 앞의 개의 조는 듯한 표정에서 이국적인 난쟁이여인의 모습, 거울속의 왕과 왕비 그리고 왼쪽에서 붓을 들고 있는 벨라스케스에 이르기까지 이 그림의 주인공은 비단 마르가리타공주 뿐만이 아니다. 한폭의 사진과도 같으면서 그림속 그림의 대상들은 관객과 얘기하는 것 같아 현대화가 100명이 뽑은 명화로도 꼽히고 있다.

▲ 스페인 산토토메 성당에 소장돼 있는 엘 그레코의 대표작중 하나인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장례식을 치르는 당시의 시대상이 생생하게 표현돼 있다.
▲ 스페인 산토토메 성당에 소장돼 있는 엘 그레코의 대표작중 하나인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장례식을 치르는 당시의 시대상이 생생하게 표현돼 있다.
이 두 화가와 함께 필자가 가장 인상 깊게 느낀 화가가 고야다. 그의 그림 역시 프라도미술관에 전시돼 있는데 그의 여러 그림을 보면서 고야 또한 자유분방하면서도 천부적인 예술적 기질을 지닌 그의 면모를 실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진실을 추구했던 그의 예술혼은 깊은 감명을 주고도 남았다.

근대회화의 창시자로 불리는 그의 생애와 예술은 3기로 구분되는데 그의 이 3기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유화·벽화·데생 등 기법의 다양화는 물론 초상화·풍속화·종교화·환상화 등 광범위한 장르를 통해 18~19세기 스페인의 전 역사를 화폭에 담았다. 그림으로 스페인의 역사를 담았다고나 할까.

프라도미술관에서 마주한 '옷을 입은 마야', '옷을 벗은 마야'에서부터 그리스신화속의 신을 묘사한 '거인', '1808년5월2일', '1808년5월3일', '알바백작부인' 등을 비롯한 그의 그림은 단순히 손으로만 그렸다기보다 그의 내면적 철학을 짙게 담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야의 그림은 죽기 전에 보아야 할 100대 그림에 속한다. 실제로 고야는 화가로서의 영화를 누렸고 궁정화가라는 최고의 대우도 받았지만, 알바백작부인과의 사랑과 이별, 죽음에 이르렀다가 귀머거리가 된 고통과 나폴레옹군대의 침입에 따른 민중들의 고통, 가톨릭의 부패를 목격해야 했던 시대상으로 그 누구보다 삶의 고뇌에 몸부림쳤던 인간이기도 했다.

스페인 여행 동안 이 세 사람의 화가와 마주하면서 필자는 화가는 무엇을 그려야 하며 어떤 그림이 명화인가라는 우문(愚問)앞에 서게 되었다. 답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스페인 여행이 의미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글·사진=조성남 주필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2.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3.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4.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5.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헤드라인 뉴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년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개최가 2024년 가을 문턱을 넘지 못하며 먼 미래를 다시 기약하게 됐다. 세간의 시선은 11월 22일 오후 열린 세종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이하 산건위, 위원장 김재형)로 모아졌으나, 결국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산건위가 기존의 '삭감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서다. 민주당은 지난 9월 추가경정예산안(14.5억여 원) 삭감이란 당론을 정한 뒤, 세종시 집행부가 개최 시기를 2026년 하반기로 미뤄 제출한 2025년 예산안(65억여 원)마저 반영할 수 없다는 판단을 분명히 내보였다. 2시간 가까운 심의와 표..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생존 수영 배우러 갔다가 수영의 매력에 빠졌어요." 접영 청소년 국가대표 김도연(대전체고)선수에게 수영은 운명처럼 찾아 왔다. 친구와 함께 생존수영을 배우러 간 수영장에서 뜻밖의 재능을 발견했고 초등학교 4학년부터 본격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김 선수의 주 종목은 접영이다. 선수 본인은 종목보다 수영 자체가 좋았지만 수영하는 폼을 본 지도자들 모두 접영을 추천했다. 올 10월 경남에서 열린 105회 전국체전에서 김도연 선수는 여고부 접영 200m에서 금메달, 100m 은메달, 혼계영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무려 3개의..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속보>="내 나름대로 노아의 방주 같아…'나는 자연인이다' 이런 식으로, 환경이 다른 사람하고 떨어져서 살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22일 오전 10시께 대전 중구 산성동에서 3층 높이 폐기물을 쌓아온 집 주인 김모(60대) 씨는 버려진 물건을 모은 이유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이날 동네 주민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쓰레기 성이 드디어 무너졌다. <중도일보 11월 13일 6면 보도> 70평(231.4㎡)에 달하는 3층 규모 주택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청소하는 날. 청소를 위해 중구청 환경과, 공무원노동조합, 산성동 자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