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
물론 여기엔 전제가 있다. 주인공이 '위기의 여자'라는 거다. 베이커리 사업을 쫄딱 물 말아먹고 만나는 남자는 그녀를 섹스파트너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나쁜 남자다. 한마디로 주인공 애니는 '되는 일이 없는' 여자다. 그녀도 친구의 결혼식을 멋지게 만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되는 일 없는 그녀가 잘 하려고 하면 할수록 말썽이 생기고 일은 꼬이고 소동은 커진다.
그녀들이 벌이는 소동극의 수위는 꽤 세다. 지하철에서 할아버지 머리 위에 '토'를 하던 한국의 '엽기적인 그녀'는 명함도 못 내밀 판이다. 위 아래로 '용암처럼' 쏟아낸다. 세면대 위, 친구의 머리 위에 '토'를 해댄다. '로맨틱'과는 거리가 먼 '코미디'다.
제작진과 출연진을 보자. 제작자 주드 애파토우는 너저분한 유머와 섹스코미디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웃기는 사람으로 꼽히는 남자다. 게다가 감독은 미드 '오피스'의 몇몇 에피소드를 맡아 웃음을 이끈 폴 페이그다. 애니 역의 크리스틴 위그를 비롯한 배우들은 미국 코미디 버라이어티쇼 '세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출신들이다. 영화가 쏟아내는 화장실 유머와 섹스 코미디가 어떤 수준일지 감이 잡힌다. 그녀들이 화장실로 달려가는 듯하면 꼭 심호흡하시길.
'웃기고 보자'고 만든 영화지만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의 묘미는 여성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파헤치는 데 있다. 쿨한 모습 뒤에 숨은 여자들의 질투심 경쟁심리 사랑 우정 자아찾기 등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솔직하게 드러내 여성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질투를 숨기지 않고 과감하게 표출하는 그녀들의 몸싸움과 속 시원하게 쏟아내는 거침없는 대사들은 '여성스럽게' 보이려고 참느라 쌓였던 체증을 싹 날려버릴 듯하다.
“2~4년짜리 행복한 표정” 등 대사도 재치있고 역할에 썩 잘 어울리는 캐스팅은 영화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사고뭉치, 음식만 탐하는 밉상, 잿밥을 노리는 여우 등 결혼식에 한 명씩은 꼭 있지 않은가.
남자들, 특히 “우리 동네 어떤 여자 얘긴데…”하고 시작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곧 자신의 이야기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는 고개를 갸웃할 장면이 여럿 있다. 이런 숙맥 남친과 영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 또 여친이 너무 예쁘고 천사 같아서 화장실에도 안 갈 거라고 믿는 순진 남친이라면 확 깨는 영화다.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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