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진]일제에 빼앗긴 윤동주의 시혼(詩魂)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안영진]일제에 빼앗긴 윤동주의 시혼(詩魂)

[시론]안영진 前 중도일보 주필

  • 승인 2011-08-24 16:49
  • 신문게재 2011-08-25 21면
  • 안영진 중도일보 前 주필안영진 중도일보 前 주필
▲ 안영진 前 중도일보 주필
▲ 안영진 前 중도일보 주필
광복 66주년을 보내면서 애국인사들의 면면이 뇌리를 스쳐갔다. 김구, 안창호, 신채호, 여운형, 윤봉길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이 많은 얼굴들. 그 중 시인 윤동주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는 일본 유학시절 '후테이센징(不逞鮮人)'으로 몰려 후쿠오카 형무소에 구금되었다가 끝내 옥사를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시는 몇몇 일인 양심인사들에 의해 발굴되면서 양명가도를 달렸다.

물론 패전 후에 있었던 일이다. 그러니까 윤동주는 일제에 의해 죽었으나 일인들 손에 양명을 하는 묘한 운명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1917년 12월 30일 당시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나 서울 연희전문 문과(2년)를 졸업하고 일본유학길을 떠났다. 그러나 교토의 동지사대학 재학 시 불순분자라 해서 경찰에 의해 투옥된 후 옥사를 하고 말았다. 채 펴보지도 못한 꽃봉오리처럼 20대에 요절한 그에게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을 남겼다. 처음에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으나 세월이 가면서 국내에서 인기가 치솟았다.

필자는 그간 윤동주를 인양한 일본의 양심파 지성들을 추적한 바 있다. 이부키고오(伊吹鄕)는 윤동주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화제를 모은 지성이다. 번역솜씨가 원작 못지 않게 유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기도 하다. 오무라 마쓰오(大村童夫) 와세다 대학교수인 그는 1985년 5월 14일 중국 용정중학교를 찾아가 윤동주 시집을 전하는 한편 그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 바람에 윤동주 명성은 용정 뿐 아니라 한국으로 파급된 것이다.

여류시인 이바라기 노리코(茨木)는 윤동주의 시세계를 섬세한 안목으로 재평가한 인물이다. 그녀는 대화,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자신의 감수성 정도, 촌지=寸志, 시심을 읽는다 등의 저서를 갖고 있다. 도쿄 출생인 그녀에게 우리가 향의를 갖는 것은 공주, 부여를 주제로 한 한글나들이라는 저서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윤동주의 시세계를 대담하게 해부하고 있다. 1980년대 초 필자가 그녀를 찾아가보니 도쿄한복판 '이나리신사' 옆에 예쁜 2층 양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작품집 한글나들이(はんぐるへの旅)를 번역해서 팔아먹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청을 선선이 받아들이며 메모지에 “'한글나들이' 번역을 수락합니다”라고 적은 후 수정도장을 찍어주던 여류시인…. 출판기념회 때는 꼭 참석해달라는 청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이 떠오른다.

풍만한 체구에 귀족 티가 흐르는 그런 시인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러면 이바라기의 윤동주 평은 어떤 것인가. '돌아와 보는 밤'= 평소 '다치와라(立原道造)'를 좋아했던 윤동주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서로 다르다는 지적이다. 정감은 서로 피아노의 선율처럼 흐르고 있지만 그 깊이는 윤동주 쪽이 한수 위라고 했다.

'다치와라'의 시가 음악처럼 부드럽긴 하나 핵이라 할 중심부가 허약하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비해 윤동주는 밑바닥에 힘이 깔려 있을 뿐 아니라 섬세하다. 그리고 윤동주는 '쉽게 쓴 시'에서 부모님의 땀내 나는 학비봉투에 비해 쉽게 글을 쓴다는 건 사치라며 자책을 한다.

'또 다른 고향'은 윤동주가 24세 때 쓴 시로 3년 후에 다가올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예언하고 있다. 필자 역시 윤동주 발자취를 캐러 도시샤대학을 찾아간 일이 있다. 정문(수위실)에선 윤동주의 시와 선전물을 방문객에게 건네준다. 정지용 시인도 이 대학 출신이지만 인기는 단연 윤동주 쪽이었다. 이밖에도 윤동주 연구에 힘쓴 언론인이 있다.

니시닛퐁(西日本)신문 이데(井手俊作)부장이 그 장본인이다. 그는 종전(태평양전쟁) 50주년 특집물로 윤동주의 '빼앗긴 시혼(詩魂)'을 다뤘다. 그는 윤동주가 형무소 수감 당시 약물 주사를 맞고 미친 듯이 소리치며 몸을 꼬았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당시 규슈(九州)대학에선 전쟁으로 부족한 혈장 대용인 식염수 사용을 위해 생체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이는 윤동주의 죽음과 무관치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데 부장이 그 연재물을 필자에게 보내주어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한다. 늦었지만 이를 한국 측 지면에 소화할 생각이다. 이데 부장은 후쿠오카 형무소와 동지사대학, 시다카모(下鴨) 경찰서, 국회도서관을 꽤나 찾아다녔다고 했다. 어떻든 윤동주는 요절했지만 그의 작품들은 격조 높은 것이라는 데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논쟁거리가 있다면 그의 시가 '저항시'냐 아니면 '서정시'냐 하는 점이다. 이 또한 한국문단이 챙겨야 할 숙제라 할 수 있다. 요즘 독도문제로 한·일간의 국민감정은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윤동주를 발굴한 일본의 양심파 지성들은 요즘 어떤 표정일까를 생각해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2.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3.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4.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5.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1.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2.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3.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4.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5. [현장취재]대전MBC 2024 한빛대상 시상식 현장을 찾아서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