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을 행정도시로 성장시킨 정부대전청사 모습.1997년 12월 입지한 정부대전청사는 인텔리전트형 건물 4개 동에 41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
정부대전청사는 과학기술도시 대전에 중앙행정도시 성격을 갖게 한 계기였다. 대전시가 인구 150만을 돌파하고 서구 둔산지구 일대를 행정타운으로 조성하는 밑거름이었으며 도시기반을 확충하는 기회였다.
특히, 서울이 아니어도 지방에서 중앙부처가 행정을 펼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점을 증명하는 사례였으며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를 원안으로 지켜내는 중요한 논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중앙행정기관을 지방에 이전시켜 균형발전정책이 결실을 보기까지 진행된 역사는 쉽지 않았다.
▲대전, 행정의 도시로 거듭= 정부대전청사는 서울ㆍ경기도의 수도권을 제외하고 지방으로 이전한 유일한 중앙행정기관 공동청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전국의 주요 정책을 입안하는 관세청ㆍ조달청ㆍ통계청ㆍ병무청ㆍ문화재청ㆍ산림청ㆍ중소기업청ㆍ특허청 등 8개 차관청과 행정안전부 소속 국가기록원ㆍ청사관리소, 감사원 대전사무소가 자리하고 있다.
수입되는 물품에 관세를 부과·징수해 국가재정 수입을 확보하는 중앙행정 사무부터 국가의 병무행정을 관장하고 중소기업육성시책의 수립·추진하며 산업재산권을 적기에 보호함으로써 산업기술 개발의 촉진을 지원하는 등의 중앙정부업무가 정부대전청사에서 이뤄진다.
대전 둔산지구에 소재한 정부대전청사에서 논의되고 결정되는 사안들이 정부의 정책으로 이어져 전국에서 시행되는 말그대로 행정의 중심에 있는 셈이다.
정부대전청사의 대전 입주는 대전이 중앙행정도시라는 대외이미지 외에도 경제적 효과 등 지역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대전청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만 4100여명이며 그에 딸린 가족까지 고려했을 때 정부대전청사로 인한 대전 순유입인구는 1만2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정부대전청사에 공무원 입주가 시작된 1998년부터 2007년까지 대전시는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증가해 왔다.
이 기간 대전 인구는 13만명이 증가해 인구증가율은 9.7%를 기록했으며, 같은 기간 인구증가율 서울 1.2%, 부산 6.6%, 울산 8.0% 보다 높은 수준으로 정부청사 입주와 함께 대전이 성장해 왔음을 의미한다.
대전의 인구증가 요인 중 한 부분이 되어 줌으로써 둔산 신시가지 조성과 간선도로를 비롯한 사회간접자본이 확충되는 효과를 거뒀다.
또 청사 입주와 동시에 대전시는 둔산 시가지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둔산동은 물론 만년동, 월평동에 대규모 주택지와 상업지가 조성됐다. 간선도로를 비롯한 사회기반시설이 확충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면서 인구분산과 국토의 균형발전에도 정부대전청사의 대전입주는 정책목표를 달성한 셈이 됐다.
정부대전청사 대전입주는 자연스레 타 지역 공무원들의 업무상 대전출장을 이끌어 대전이 명실상부하게 대한민국 행정의 중심도시가 됐다.
▲국가행정기관 지방이전 첫단추= 정부대전청사는 행정기관의 지방이전을 통해 국가균형발전을 유도하는 정책의 첫 시험대이기도 했다.
국토균형발전 목표 아래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1964년 건설부가 발표한 대도시인구집중방지정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권은 인구ㆍ경제ㆍ자본 등이 집중돼 과밀현상을 빚고 지방은 과소현상으로 국토의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1964년 이전계획에는 농업관계시설과 군시설의 지방이전이 계획됐으나 실행되지 못했으며, 이후 1969년대 도시인구 및 시설의 조정대책과 1970년 수도권인구과밀억제에 관한 지침, 1971년 1차 국토종합개발계획, 1972년 대도시인구분산시책 등으로 이어진다.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실질적으로 시행한 시책은 1973년 경제기획원에서 수립한 1차 대도시 인구방지책이었다.
이 계획에서는 서울의 인구집중을 억제하고 기존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할 수 있도록 22개 정부기관과 23개 국업기업체가 이전 대상이었다. 이들 이전 대상기관 중 35개 기관이 지방으로 옮겼으나 5개 기관은 민영화되면서 서울로 재복귀하기도 했다.
이후 2차 이전계획(1980년)을 통해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 6개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국립지리원 등 2개 정부부속기관이 지방으로 옮겼다.
그동안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정부기관의 지방이전은 1985년 총무처가 계획한 3차 이전계획부터 본격화된다. 수도권 연계가 적은 당시 철도청 등 13개 기관(9청 10개 기관)을 이전 대상으로 했다.
하지만, 이전계획을 통해서는 13개 기관 중 한국담배인삼공사 1개 기관만 이전하는 등 정부기관의 지방이전 실적이 부진하자 3차 이전계획 일부를 수정해 서울과 과천에 이은 제3청사를 지방에 건립해 9개청 단위기관을 이전토록 결정했다.
이에따라 정부기관을 수용할 수 있는 대전청사 건립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1993년부터 공사에 들어가 1997년 12월까지 5년간의 공사 끝에 11개 기관 4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20층 높이의 건물 4개 동을 서구 둔산동에 신축했다.
당시 정부대전청사에 근무해도 거주지는 그대로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출퇴근하는 많아 지역균형발전정책에 효과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지적부터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기러기 공무원을 양산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정부청사 대전입주 후 13년 동안 정부청사 직원들 대부분 가족과 함께 대전에 정착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전국의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는 중앙단위 행정기관이 지방에 옮기더라도 행정사무에는 이상이 없다는 점을 보여준 성공적인 시험대였다. 때문에 세종시에 많은 난관이 있어도 정부대전청사의 사례를 통해 중단없이 세종시가 추진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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