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새역사의 중심… 80년만에 다시 도민품으로

충남 새역사의 중심… 80년만에 다시 도민품으로

한일합방 전후 청사이전 여론 대두… 1932년 日강점기 공주서 대전으로 옮겨 도민 염원속 80~90년대 두번의 도내이전 논의 불구 IMF사태 등으로 불발

  • 승인 2011-08-22 17:12
  • 신문게재 2011-09-01 25면
  • 최두선 기자최두선 기자
충남도가 1932년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한 충남도청을 2012년 말 홍성군 홍북면과 예산군 삽교읍 일대로 옮겨 ‘내포시대’를 연다.

대전으로 도청 소재지를 옮긴 지 딱 80년 만에 충남도민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충남도청 이전의 역사를 되돌아본다.<편집자 주>


▲대전 이전

충남도청의 시초인 충남관찰부는 1896년(고종 33년) 칙령 제36호로 13도제로 개편되면서 충남도가 충북도와 분리돼 공주사대부고 자리 감영(監營)건물 선화당(宣化堂)에서 개청했다.

그러나 한일 합방 전후부터 충남도청을 경부선과 호남선이 지나는 대전으로 옮겨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됐고, 1924년 경남도청이 진주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산으로 이전되면서부터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총독부에서 1930년 11월 도청 신축 예산안을 편성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공주지역에서 도청 이전 반대 운동이 본격화됐다.

대전, 천안, 조치원, 논산 등 충남도내 곳곳에서 ‘로비와 진정’ 청탁 등의 방법으로 반대 또는 유치를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이는 당시 언론들이 “어여쁜 기생첩 하나를 두고 다섯 사내가 다투는 꼴”이라고 논평할 정도로 심했다.

공주 유지들은 예산안 편성 소식을 듣자 ‘공주시민회’를 만들어 군중시위를 전개하는 한편, 30여명 규모의 진정위원단을 총독부에 파견했고, 도청 이전을 기대하던 조치원과 천안 유지들이 대전 이전 계획에 반발해 총독부에 진정단을 파견했다.

사태가 복잡해지자 총독부는 이듬해 1월 총독부 내무국장 명의로 도청의 대전 이전 사실을 기정사실화했다.

공주 유지들은 동경 제국의회까지 로비와 진정 활동 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시민대회와 결의문 채택, 시장 상인들의 철시 투쟁 등 대규모 군중집회와 시위를 연이어 강행했다.

그러나 충남도 당국은 “이미 결정된 일이니 ‘보상물 문제’ 등 사후대책이나 강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경찰을 동원해 시민회 사무실을 수색하고, 간부를 구금하는 등 강경하게 탄압했다.

도청 신축 예산안은 황족, 화족 등으로 구성된 귀족원으로 넘겨졌고, 3월13일 중의원의 결의를 무시하고, 총독부안을 지지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공주 주민들은 횃불시위, 시장통 투석전 등을 감행했고, 경찰은 50명의 주민을 구금하는 등 강경 진압했다.

사태가 기울었음을 감지한 공주 유지들은 도 내무부장을 방문해 “향토애 때문에 그런 것이지 다른 뜻은 없었다”는 취지의 사죄를 하고, 도청 이전을 전제로 한 보상물 협상을 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12일 충남도청사 상량식, 1932년 5월30일 준공, 7월17일 부령 제48호에 의한 공주에서 대전 이전 결정 공포 등을 과정을 거쳐 9월3일 이전이 이뤄졌다.

도청의 이전과 함께 대전군청, 공주지법 대전지청, 보병80연대 제3대대, 경찰서, 형무소, 헌병대 출장소, 전매국 출장소, 우편국, 각종 학교, 식산은행 지점, 조선금융조합연합회지부, 대전피혁 등 각종 관공서와 회사가 설립됐다.

▲두 번의 도청 이전 유보

도청 이전을 하기 전에 이미 도시 면모를 갖추고 있던 대전은 도청까지 이전하면서 더 큰 도시 면모를 형성했다.

충남도의 행정·산업·경제·교통·통신·문화 등 모든 기능이 대전에 집중돼 1940년 11월 행정구역을 확장해 32개동 3만5712㎢의 면적에 6만9712명에 달하는 한국 내 24개 중 17번째 가는 도시로 발전한 것.

이후 충남도청은 행정 중심지로 존재해왔으나 1989년 1월1일 중앙정부가 대전시를 직할시로 승격시키면서 대전시는 충남도와 분리되면서 도 단위 각종 유관기관이 대전 및 도내 여러 지역에 산재해 유기적인 협조체제가 미흡, 일관성 있는 도정 수행이 어려웠다.

특히 대전시와 충남도 간 사회·경제적 격차가 갈수록 심화됐다.

1988년 대전시 인구는 전국 대비 2.2%에 불과했지만, 1995년 2.9%로 증가한 반면, 충남은 같은 기간 7.1%에서 4.0%로 감소됐다.

이에 따라 충남도청을 도내로 이전해야 한다는 논의가 1991년 제4대 도의회 구성과 함께 시작됐고, 이듬해 12월24일 도의회에 ‘충남도청이전특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본격화됐다.

그리고 충남도의회는 1993년 11월부터 12월까지 약 한 달 간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 의뢰해 ‘충남도청 이전에 대한 도민여론조사’를 진행했다.

1994년 1월 도청이전특별위원회에 보고된 조사 결과를 보면 도청 이전 여부의 경우 71%가 찬성하고, 이전지는 충남의 중심이 되는 곳이 46.6%를 원했다. 이전 시기는 가급적 빨리하자는 응답이 66.2%였다.

도청이전추진위는 1995년 2월 국토개발연구원에 관련 연구용역을 의뢰했지만 계속 기피해 충남발전연구원이 수행하게 됐다.

충발연은 연구용역에서 총 2조5820억원을 들여 1700~2000㏊의 면적에 20만명 규모의 특화형 복합기능도시로 개발할 것을 제안하는 결과를 내놨다.

이어 연구결과에 대한 토론회가 이듬해 12월 도의원과 시·군 의원, 지역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토론회를 갖는 등 속도를 냈지만, 암초에 부딪치고 말았다.

1997년 1월 한보철강 부도를 시작으로 한 기업들의 연쇄 부도, 법정 관리, 주가 하락과 환율 상승,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 고갈 등의 사태를 거쳐 결국 IMF 구체 금융을 받게 됐고, 우리 경제 수준은 10여년 전 수준으로 퇴보됐다.

상황이 이렇자 심대평 충남지사는 1998년 12월 도정 질의에서 “막대한 예산투자 방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경제난 극복에 전력할 때”라며 “2000년까지는 도청이전 문제를 논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도청이전의 첫 시도가 불발된 것이다.

도청이전 2차 연구는 1996년 기초조사 연구용역의 정책제안을 근거로 2001년 8월부터 이듬해 12월 말까지 추진했다.

이 연구에서 도는 입지기준, 입지기준 가중치, 후보지 선정 및 평가방법, 세부항목별 측정지표 등을 결정했으나 연구기관의 객관성 및 공정성 등 여러 쟁점이 제기됐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신행정도시 건설 방침에 따라 도청 이전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에 대한 검토가 불가피했다.

도는 이에 따라 신행정수도 후보지 결정일에 연동한 도청이전 추진 계획 시나리오를 마련하기도 했으나 전문가 등이 국가사업(신행정수도)가 확정된 다음 도청이전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면서 또다시 연기됐다.

▲예정지 확정

▲ 충남도청 신청사 건설 현장 전경과 조감도
▲ 충남도청 신청사 건설 현장 전경과 조감도
정부는 2004년 2월 출범한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같은 해 6월 입지선정 기준안을 확정한데 이어 8월4일 연기·공주지역으로 예정지를 선정, 발표했다.

충남도는 이에 따라 2005년 7월 ‘충남도청이전을위한조례’를 제정·공포했으며, 김유혁 당시 금강대 총장을 위원장으로 한 도청이전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같은 해 9월에는 도내 시장·군수와 시·군의회 의장이 참석한 가운데 ‘도청이전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동의협정’을 체결했다.

그리고 조례에 따라 5개 분과 총 70명이 참여한 평가단을 구성했으며, 같은해 11월15일 1권역(천안, 아산, 예산)을 시작으로 도내 16개 시·군 5개 권역별 공청회를 열고, 예정지 선정 작업에 속도를 냈다.

그리고 입지기준안에 대해 16개 시·군별 의견을 재차 수렴해 입지 기준을 최종 확정했다.

그러나 천안시와 아산시, 당진군 등 3개 시·군이 확정한 입지기준에 대해 완강히 반대하면서 불협화음이 나기도 했다.

도는 이어 5개 항목 20개 세부지표가 담긴 평가기준안을 마련하고 공청회를 열어 최종 확정하는 등 도청 이전에 속도를 더했다.

이 과정에서 천안시와 아산시는 2006년 1월 도청이전 추진 중단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도는 입지기준에 의해 아산시 신창면 일원(북부내륙권), 당진군 면천면·순성면 일원(북부해안권), 홍성군 홍북면·예산군 삽교읍 일원(중부권), 보령시 명천지구 일원(남해안권), 청양군 청남면 일원(백제고도권), 논산시 상월면 일원(대전근교권) 등 6곳을 최종 평가대상지로 정했다.

최종 이전 예정지 선정을 앞두고 도는 지역의 대표인 시장·군수 및 시·군 의장단, 각계 원로 등과 간담회를 연이어 개최하고, 지역화합을 위한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2006년 2월 철저한 보안 속에 대전시 유성구 전민동 한국토지공사 대전연수원에서 4일 간에 걸친 평가 작업을 했고, 홍성군 홍북면·예산군 삽교읍 일원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최종 평가 결과를 지켜본 도내 시·군들은 찬성과 반대, 아쉬움 등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도청이전 예정지 선정 과정 내내 불만을 토로한 천안시와 아산시는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군은 결과에 수긍하며 차질 없는 사업 추진을 주문했다.

도는 예정지역이 확정되자 곧바로 지정 공고를 하고, 홍성군 홍북면과 예산군 삽교읍을 새로운 도청이전 예정지로 못 박는 ‘도청 소재지 변경에 관한 조례안(공포 3월20일)’을 마련하는 한편, 도청이전 예정지역의 개발행위 제한 고시를 했다.

이후 정해진 절차에 의해 도청이전 신도시 건설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뒤 2009년 6월 착공식을 갖고, 첫 삽을 떴다.

도청이전 예정지 결정 과정에서 당시 실무 총괄을 맡은 백낙흥 투자유치담당은 “충남 서해안은 서해안고속도로 개통과 충남도청이전 신도시 출범으로 환황해권 시대 발전의 중요한 전기를 맞게 됐다”며 “상생과 협력의 정신으로 충남의 눈부신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두선 기자 cds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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