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물간격이 비교적 넓고 주택담장도 투명하게 처리돼있어 범죄의 자연감시가 비교적 양호한 유성구 노은동 전원주택단지/사진=김상구 기자 |
지난 6월 30일 오후 4시 30분께 서구 둔산동 모 아파트에서는 학부모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아파트에 사는 초등생 A양(11)이 괴한에게 납치된 것.
다행히 A양은 같은 아파트 옥상에서 발견, 부모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갔지만 괴한은 아직도 경찰 수사망에 걸려들지 않고 있다.
경찰 수사가 난항을 겪는 이유 중 한 가지는 A양을 빼고는 제2의 목격자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둔산서 관계자는 “납치 사건 특성 상 목격자는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하기 마련인데 이 사건의 경우 관리사무소 직원 1명이 지나치듯 괴한을 봤을 뿐 이렇다할 목격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허탈해했다.
아파트 안팎에 유동 인구가 비교적 많았을 시간대임에도 이처럼 목격자가 없는 이유는 납치 장소 구조가 범죄 감시에서 취약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 기자가 직접 해당 아파트에 찾아가 살펴본 결과 아파트 출입구에 차량 출입 차단장치가 없어 외부인 출입이 자유롭다.
또 높이 4~5m가량의 높은 나무와 체육시설 펜스로 겹겹이 둘러싸여 져 있어 범죄가 발생한다고 해도 좀처럼 이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더구나 준공된 지 오래된 이 아파트에는 ‘말 없는 목격자’ CCTV도 충분하지 않아 경찰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녀자를 상대로 100여 차례에 걸쳐 성폭행 행각을 벌여오다가 수년 전 검거된 ‘원조 발바리’도 자신의 범행을 최대한 숨길 수 있는 곳을 노렸다.
발바리가 범죄 행각을 10여 년 동안 어렵지 않게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한 가지가 범행 무대의 폐쇄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경찰의 시각이다.
이같은 환경은 ‘범죄예방환경설계’, 이른바 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 Design) 관점에 비춰 볼 때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PTED는 기존 순찰 중심의 범죄 예방 활동에서 탈피, 건축설계나 도시계획 등 분야에서 범죄 발생 개연성을 줄여 범죄를 예방하는 기법이다.
▲자연적 감시 ▲자연적 접근통제 ▲영역성 ▲활용성 증대 ▲유지관리 등 5대 원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국내 주요 도시는 최근 CPTED 개념을 앞다퉈 적용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7월 재정비촉진(뉴타운) 사업에 범죄예방환경설계 지침을 도입키로 했다.
아파트 단지의 경우 경비실 인근에는 관목 위주의 조경수를 심어 모든 방향의 감시가 가능케 하고 놀이터는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설치하는 등 각종 시설 위치부터 조경시설, 건축물 창 빛가림 정도까지 범죄예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서울시는 이 지침을 관내 35개 뉴타운 사업에 적용한 뒤 점진적으로 소규모 재개발 및 재건축 사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부산시도 지난 4월 부산 시민공원 설계에 CPTED 지침을 적용키로 결정했다.
울타리 위치, 수목 간 거리, CCTV 및 조명 등의 조도에 관련한 세부사항을 정하고, 정해진 곳을 통해서만 공원을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범죄발생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비해 대전시 및 충남도는 아직 CPTED 도입이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충남도의 경우 지난해 4월 충남경찰청과 충남도교육청 등과 함께 CPTED 업무협약을 체결했지만 이후 실행 내용은 미미한 편이다.
건축심의위원회 심의기준에 범죄예방 기준을 마련, 시행하고 있지만 조례 등을 통해 강력하게 제한하는 사안은 아니어서 적극적인 도입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충남도 관계자는 “범죄 예방 부분을 건축심의 시 강조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해 조례상에 명확하게 규정된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대전시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오는 2013년 CPTED 지침 도입을 장기적인 목표로 잡고 있는 데 현재 추진 중인 사업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대전시 관계자는 “도안신도시 1단계 일부 지역에 CCTV 등 설치 등을 빼고는 관계 법령 미비와 건설사 등의 경제적인 문제로 당장 CPTED를 도입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강제일 기자 kangjeil@
▲ 건물과 건물사이의 간격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범죄에 대한 자연적 감시가 어려운 서구 갈마동 원룸촌 전경/사진=손인중 기자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