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역사… 의자왕 사치ㆍ향락에 빠져 무능, 한때 한강 진출 그저그런 나라, 중ㆍ고교 교과서 서술 초라
올바른 역사… 용감하고 효성깊어 '해동증자', 필리핀 몽골까지 진출 '대국', 재검증 격에맞는 교육 필요
▲ 부여 궁남지 |
‘계백 장군은 진정한 충장인가?’
‘의자왕은 그렇게도 형편없는 군주에 불구한가?’
삼국사기 열전에서 계백 장군은 출전에 앞서 아내와 자녀를 살해했다고 전한다.
적의 백성이 되는 것이 죽는 것보다 수치스러운 일이겠지만, 가족과 민족,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워야 할 장수가 적군에 대항하기도 전에 가족을 살해했다는 것은 어딘지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싸워보기도 전에 전쟁을 포기했다는 의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또 전투 중에 적장의 무용을 아끼고 사랑해 소년 화랑을 살려 보내 인간애를 실천한 대장부로 묘사한 것 역시 장군의 모습으로 보기엔 어딘지 어색해 보인다.
사치와 향락에 빠져 백제를 멸망시킨 의자왕은 어떤가?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의자왕은 충신의 충언조차도 듣지 않고 국정을 도외시한 채 향락에 빠진 인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같은 책인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조의 다른 기록에는 전혀 다르게 그려졌다. 의자왕은 무왕의 맏아들로 용감하고 대담해 결단성이 있으며, 부모를 효성으로 섬기고 우애가 있어 당시 백제인들이 중국의 증자와 같은 해동증자(海東曾子)로 추앙했다.
어떤 모습이 ‘계백’과 ‘의자왕’의 진실일까?
이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고대사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펼쳐져 백제와 관련해 논리적으로 맞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
‘계백’과‘의자왕’은 단편적인 예로 백제사의 상당 부분이 왜곡돼 있다는 것이다.
이남석 공주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는 추상적이고 무형적이어서 정확한 해석이 어렵지만, 특히 백제사는 왜곡된 부분이 많다”며 “역사를 제대로 해석하기 알기 위해서는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구성하고 사변적 연구를 통해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백제사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 까지만 해도 척박함을 면치 못했다. 이후 1970년대 초 무령왕릉이 발굴되면서 그제야 백제의 진면목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무령왕릉 발굴 등을 통해 백제는 한때 한강 근방을 차지했을 뿐인 그런 나라가 아님이 증명됐다. 무령왕릉은 백제의 역사와 유산을 가장 구체적으로 상징, 백제문화의 특성뿐만 아니라 고대 세계에서 백제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내에서의 국제교류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백제 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국제성’이다. 북방의 고구려가 여러 이민족과 투쟁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고, 신라가 자기 조직의 내부적 결속을 강화해 영향력을 확장시켰다면 백제는 새로운 문물의 전수를 통해 자기 문화화로 국가적 발전을 신장시키고 문물 교류를 통해 고대 동아시아 세계에서 자기 위치를 확보해 나갔다.
이는 21세기의 화두인 ‘개방’과 ‘국제화’와도 일맥상통한다. 고대 백제와 백제 문화가 국제화를 지향하는 세계사적 흐름에서 대단히 유용한 역사적 전범(典範)이라 할 수 있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 강종원 박사는 “백제는 지리적 특성을 활용해 개방적인 자세로 끊임없이 주변국과 교류 활동을 했다”며 “무령왕릉에서 나온 유적들은 백제 교류문화의 특성, 국제적 성격, 선진문화를 받아들여 주변국에 전파한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백제사 전반은 패망국이라는 이유로 재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당장 중ㆍ고교 교과서에 실린 백제사에 대한 서술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더욱이 교과서의 내용은 정설로 여겨질 정도로 파급력이 강해 왜곡된 백제사가 사실인 것처럼 굳어질 위험성을 갖게 된다.
이에 역사학자들은 백제사에 대한 재검증을 통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백제사에 관한 기록이 적어 재해석이 어렵다면 중국과 일본에 남아있는 백세사를 재검토하고, 기존에 발굴된 유물 등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 당시의 생활상과 사회상을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백제는 작은 나라’라는 편견도 버려야 한다. 패망국 백제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견해 탓에 백제에 관한 여러 문헌 기록과 증거들이 제대로 해석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문화재 복원과 관리, 활용 등에 대한 체계적인 방안도 마련해 백제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야 한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학문은 평생의 지식이 될 수 있어 교과서에 수록된 왜곡된 백제사를 재정립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백제의 시조는 온조왕으로 실렸지만 다른 기록을 보면 비류왕임을 알 수 있기에 시조 설화부터 고쳐져야 한다”주장했다.
이어 이 교수는 “역사학자들 조차도 백제는 소국이었다는 선입견에 묶여 백제사를 축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며 “백제의 국제교류는 일본, 중국은 물론 필리핀, 캄보디아, 몽골에 이르기까지 활동 반경과 무대는 현대인의 상상을 뛰어넘었으며 문헌에서도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은희 기자 kugu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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