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
길호가 그렇게 소식 전해 왔다. 아무렴. 가야지. 가는 거야 어렵겠냐. 비행기 타고 배 타고 가면 되지. 그런 삶 살면 오죽 좋겠냐. 말이 그렇지 어디 쉽냐. 내 맘대로 뭐 하나 되는 게 있냐. 달랬다.
이리저리 눈치 보고 사는 거다. 지쳤다 하더니 정말 힘드냐. 애들 아직 결혼 전이지. 아파트 하나로는 마음에 차지 않지. 인생이란 게 어렵고 힘든 일투성이라고 느낄 만도하다. 하고 싶은 거 하며 사는 방법. 있지. 있고 말고. 더 벌려 하니까 없지. 더 올라가려 하니까 없지. 욕심 줄이고 가볍게 하고. 쉽지는 않지. 그래도 어디 한번 해 보지 그래.
아라이 겐타로는 그렇게 살았다. 일본경찰청 국제협력관실 소속 계장.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위. 가난한 농부의 아들. 고학으로 대학 졸업. 순사 됐다. 목표는 경찰서장이었다. 꿈도 있었다. 아마존 강에서 낚시하기였다. 도쿄에서 경찰서장으로 정년퇴직. 목표 달성하자 바로 아마존 행. 낚싯대 드리웠다. 꿈 성취. 환한 그 얼굴. 부러웠다. 이렇게 사는 사람 몇이나 되나. 찾기 힘들게다. 그도 젊은 시절부터 가슴에 품어온 그것이 있었다. 한 우물 봉직 끝나면 시작하리라 했다. 수의사 되기. 동물의사라니. 좋지 않은가.
드디어 퇴임. 기회가 왔다. 단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 직장 생겼다. 여유 생겼다. 부족함 없는 생활. 편안함에 빠져 들었다. 꿈 잊고 지냈다. 세월만 흘렀다. 사십대 후반 영초가 사표 냈다. 지난 스무 해 직장생활. 안온했다. 앞날도 보장되는 일터. 무언가 허전했다 한다. 마음에 구멍 뚫린 듯 차지 않는 삶. 그래서 그만 두었다 한다.
점심을 샀다. 잘 했네. 이제 진짜 하고 싶은 일 하시게. 남 보기에 좋은 일은 손대지 마시게. 이리저리 재면 주저하게 되지. 영영 못하게 되네. 무식하게 시작하시게 했다.
그 또래 변동 많은 이 여름이다. 호재가 새 직장 나가기 시작했다. 준종이는 새 길 모색 중. 다들 이십여 년의 경력을 뒤로 한 결정. 어디 마음 한 구석인들 편하랴.
이럴 즈음 성철이 편지 도착. 존경하는 형님. 첫머리 존경이라는 말 오래 만이라 생소하다. 폭우와 무더위 속에서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이어지는 글도 고전 스타일이다. 이런 편지 내는 이 곁에 있다니. 난 행복하구나. 계속 읽는다. 죽 죽 내리는 비. 술잔만 비웠습니다. 보내주신 특급열차 놓친 느낌 느껴봤습니다. 완행열차 타는 기분 맛보았습니다.
왜 그리도 빠른 차만 골라 타며 살아 왔는지. 탈 줄만 알고 내릴 줄은 몰랐는지. 요즘엔 그런 걸 안주삼아 마십니다. 간단한 인생인데 복잡하게 사는 이유가 뭔지 물어보곤 합니다. 책방에 가면 무슨 답 있을라나 찾아 갔지요. 좌판에 널려 있는 책. 장마철에도 잘 팔리는 게 있나보다 했지요. 그 많은 서책. 성공학과 처세술만 눈에 들어 왔습니다. 형님께 보낼 로망만 사고 말았지요. 돌아오는 길에 친구 녀석 전화. 나 퇴출당했다. 술이나 한잔 하자. 목소리에 서글픔 배어 있었지요. 아 이럴 땐 어떻게 하나요.
허 허 이 사람아 뻔하지. 같이 취하는 거야. 지난주에도 그랬다. 송원에서 몇이 함께 마셔댔다. 희규 와서 술값 낸다 해서 그렇게 했지. 송정 불러 인생점검도 했다.
노래방 가기로 했고. 줄행랑. 기차 타고 도주. 고속은 아니었네. 완행도 아니었고. 그 중간이었지. 하마터면 모를 뻔했어. 심야열차의 곤한 흔들림 지나칠 뻔했다.
형님 저는 요즘 지나치게 행복합니다. 형님도 행복하시길 빕니다. 그렇잖아도 나도 좀 행복하다네. 푸조 주차장에 세워 놓았어. 버스로 전철로 다녔어. 못 봤던 세상 눈에 들어오더라. 서가의 책 도서관 보냈네. 장롱의 옷이며 세간잡화 벼룩시장 내놨지. 자꾸자꾸 줄여나갔어. 그랬더니 꽃 피고 새 지저귀고. 세상은 옛날 그대로인데 새 세상 보이더구먼. 허. 참.
이런 안목 만들어 주는 공작소. 인생 조난자와 진로 변경자 대상. 수리수리 마수리 인생수리 장항학교 개교. 8월 가는 딱 좋은 때 중은이에게 구상 좀 부탁한다. 9월에 만나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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