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 선생은 지금으로부터 101년 전인 1910년 8월 일제에 의한 국권피탈 사실을 알리는 포고문을 찢어버리고 이를 게시한 서산경찰서 게시판을 불사르고 항거하다가 체포·구금돼 공주형무소로 이감 중 왜경 순사부장 재등상웅(齎藤常雄)을 척살하고 피신했다.
이후 이의영으로 개명하고 30여년간 은거생활을 하면서 당진군 송악읍 기지리에서 한학을 가르치며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숨졌다.
이에 서산지역에서는 군민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서산유림에서는 1960년 시청 앞에 의사 추모비를 세워 기개와 충의를 높이 사고 있다.
음암면향토발전추진회(회장 김낙중)와 이철영 선생 추모회(회장 서두석)를 중심으로 2008년부터 모두 10여 차례에 걸쳐 국가보훈처 등에 '이철영 선생에 대한 독립유공자 지정'을 요구했으나, 관련부처에서는 '활동내용에 대한 객관적 입증자료의 보완'을 요구한 상태다.
한편, 이철영 선생은 조선 중기 좌의정을 지낸 월사 이정구의 12대 손으로 자는 윤숙 호는 정우다.
/서산=임붕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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